춥다. 갑자기 춥다. 10월이니, 절정을 향한 가을의 몸부림 정도로 해 두자. 게다가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는 오늘, 반팔 대신 긴 티를 입고 핫팩까지 주머니에 넣어 숲에 들었다.
잘박하니 젖은 땅, 물기 머금은 낙엽들이 빛나는 길. 벌써 꽃무릇은 허리를 꺾고 뿌리를 향해 누웠으며 꽃범의 꼬리는 다 지고 대만 덩그러니. 까마중과 자주 괭이밥을 보려고 다가간 곳에 주먹만 한 수박들이 대여섯. 철 지난 열매들을 그냥 지나치자니 허전하다. 어릴 적엔 수박서리, 사과 서리, 자두 서리, 참외서리로 계절을 났었는데. 상전벽해, 어딘가 숨어 있을 cctv를 잊어선 안된다. 그런데도 감성에 젖어 깜빡, 작년엔 모과 도둑도 돼봤지 않았던가. 그때도 가을, 절정의 어느 날이었지.
따끈한 콩나물국밥 먹기에도 좋은 날, 친구와 들른 식당에서 후루룩 배를 채운다. 은행알 후드득 떨어진 길을 깨끔발로 건너다 불 켜진 옷가게의 주홍빛 스웨터에 시선이 머문다. 가을이 깊어지면 빛깔 좋은 스웨터도 필요하지 않을까. 더불어 봄날의 풀빛을 품은 바지도 장만하고는 룰루랄라.
식구들 먹일 고기도 사고 치킨집 들러 매콤한 순살도 샀다. 도로 위의 와이퍼는 내 창을 두드리는 가을을 자꾸 밀어내지만 휴일의 한나절을 가을에게 내주고 돌아오는 길. 비로소 몸도 마음도 가을의 속도에 맞춘 듯.
소파에 몸을 묻고 말러의 클래식을 들으며 《신의 물방울》을 읽는다. 창문의 빗금을 때때로 바라보며 풍경에 취하는 오후, 시월은 언제나 옳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