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라고 했다. 여름을 지우고 앞자리를 냉큼 차지한 가을을 사람들은 모두 반가워했다. 이 비가 그치면 8월도 끝난다 했다. 하여 가을에 성큼 앞자리를 내준 장마는 9월이 오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출 것이라 했다.
하루가 멀다고 유리창을 두드리는 비를 보며 빗소리를 듣는다. 생각건대, 그들이 투명 하이힐을 신고 밤낮없이 춤추는 이유는 아마도 한 계절을 떠나보내는 저들만의 인사법이지 않을까 싶다.
친구와 숲에 가기로 했다. 비가 오니 더 그리워지는 숲, 각자의 가정사로 한동안 뜸했던 산책. 차에서 내리자마자 습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오다 말다 하는 비의 얄궂은 성미로 준비한 우산을 옆구리에 끼고 숲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거의 없다. 마스크를 벗고 물웅덩이에 발을 첨벙거리며 산길을 걷는다.
무성한 풀숲에 다양한 색의 꽃들이 피었다. 들꽃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렸던 내 추억 속의 꽃들에 인사를 한다. 보라, 노랑, 분홍, 하얀, 붉은 꽃들이 초록의 호위 무사들 속에 더욱더 곱다. 붉은토끼풀꽃, 쑥부쟁이, 박주가리, 비비추, 익모초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른다. 길이 끝나면 이내 잊어버리고 말 꽃들의 이름이 입술에서 휘휘 허공으로 흩어진다.
유월이었지 싶다. 친구와 함께 처음 숲을 산책하던 날, 이십 년을 산 동네였건만, 한 번도 와 보지 못했던 지척의 숲길을 걸으며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슴 한쪽에 지니고 있으니 척하면 척, 툭하면 울음.
-그날, 너의 아파트 창살에 앉은 새가 천연기념물이었어.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날, 통화 중이던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었다. 흔한 네 잎 클로버와 달리 황조롱이는 내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부여잡고 싶었던 간절한 때였다. 아파트 베란다 창살에 잠시 머물렀던 새와 마주했던 나의 시간은 행운의 화살처럼 인생의 과녁에 적중하였다.
일주일 내내 장마라고 기상청은 예보했다. 빗살무늬로 내리는 비를 보라며 쉰 살이나 먹은 친구는 방방거리며 찬가를 부른다.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끈적끈적한 얼굴엔 날벌레가 무더기로 덤빈다. 여름의 숲은 벌레 천지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거미를 눈앞에서 만나기도 한다. 지렁이는 다반사, 송충이는 너무 오랜만이라 아예 반갑다.
달콤한 비가 숲에 마법을 부렸다. 미지근한 물기를 잔뜩 머금고 몸을 부풀린 낙엽들 속에서 버섯들이 자랐다. 첫 만남이다. 올망졸망 고개를 내밀고 세상 구경하는 균들의 성장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일제히 몸을 세우고 이열, 삼열 혹은 사열, 오열 그 이상의 종대로 길 끝까지 나아갔다. 손 빠른 할머니들의 관심 밖인 저들은 분명 독버섯이다. 걷는 길의 굽이마다 갈색의, 흑색의, 붉은, 노란 버섯들이 숲지기 마냥 청연하니 비를 맞고 서 있다.
아름답다. 그리고 장엄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독버섯의 위용은 자연의 섭리에 한 치 위배됨 없이 정확하다. 비와 결탁한 음지의 습한 기운으로 승전가를 부르고 있는 버섯들에 고하노니, 아직도 몇 날 며칠은 더 내릴 빗속에서 종균들은 시도 때도 없이 왕창 번성하기를. 오늘은 누가 뭐래도 들꽃보다 버섯이다.
버섯들이 군림하는 가을장마 속을 걷는다. 나이 들어 아프고 서글펐던 요즘, 숲을 지키는 버섯 병정들의 꼿꼿한 자태가 내 여름의 끝, 한 시절을 든든히 위로하고도 남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