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남편 때문에 매일 집이 들썩거린다는 톡이 왔다. 그리고 짧은 동영상을 보내왔다. 갓 입문한 사람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것은 은근슬쩍 푸념으로 가장한 친구의 남편자랑? ^^)
시골 남자는 그토록 배우고 싶던 피아노를 오십 즈음에 시작했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당구나 골프를 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숫자에 느닷없이 피아노라... 몇 년 전에는 독서하는 아내를 따라 읽기 시작한 책을 지금은 아내보다 더 다독 중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말 독서 송년회 모임에 드레스 코드인 레드를 장착하고 나타났다. 그 남자의 아내와 딸, 장모 그리고 처남까지 회원이 된 것도 놀랄 일인데 피아노 치는 남자라니. 그리고 이번에는 연주회를 한다고 초대장을 보냈다.
눈이 크고 목소리도 큰 친구의 사회로 연주회 공간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남편의 연주회를 위해 사회를 보는 아내, 촘촘히 준비한 순서지의 글을 능숙하게 읽으며 진행하는 친구가 참 예뻤다. 오십 이후의 삶이 이렇게도 빛난다는 것을 보여 준 친구 부부, 그들을 보며 많은 생각과 계획이 내 안에도 부풀어 오른다.
짧은 인사를 끝내고 연주자가 의자에 앉는다. 첫 곡은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1악장'이다. 긴장한 탓인지 시작한 지 얼마 안 있어 음이탈이 났다. 박수와 함성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긴장한 연주자의 마음에 닿았는지 이후 들려주는 루드비코 에이나우의 '그래비티'와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꿈속의 웨딩', 영화 아멜리에 OST '어느 여름날의 노래'를 성공적으로 연주했다. 함께한 관객들은 사진과 영상으로 추억의 시간들을 공유했다.
모든 곡이 끝나고 연주자는 실수한 처음 곡을 다시 연주하고 싶다며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멋진가. 실수를 껴안고 다시 시작하는 연주의 시간이 이전의 세 곡보다 더 아름다운 울림으로 공간을 채웠다. 흑백의 건반 위에서 비로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한 남자의 시간. 먹고사는 생존의 시간을 건너 예술의 허기를 채우며 나누는 그의 용기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삶의 공식 아니었던가.
적어도 피아노 치는 남자를 보러 온 관객들은 이 공식을 기억하고 응원하는 자들이 분명하다. 실력을 뽐내는 전문가들의 연주보다 기염을 토하는 아마추어와 함께하는 소확행의 시간 속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는 무리들의 힘을 본다. 그 힘의 기운을 빌어 생존의 시간 앞에 저만치 밀어 두었던 글똥을 나도 다시 누어야지 싶다. 자판 위의 자음과 모음이 내 예술의 허기를 채우고 책 속의 한 문장에서 누군가를 위해 빛날 어느 날을 기대하며. 피아노 치는 남자, 그의 용기가 지핀 잉겅불이 나를 넘어 또다른 누군가에게 뜨겁게 닿아 마침내 우리들의 삶이 온통 예술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