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에는 경산시장이 있다

by 글똥

쌀과 선물보따리를 차에 실었다. 전달받은 주소지를 입력한다. 구불한 골목길을 지나 막다른 길이구나 싶은 곳에 아담한 빌라가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누구나 산타를 기다린다. 아이들은 순진하게, 어른들은 엉큼하게. 어른이 되어 타인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잘 살고 있다는 삶의 징표다. 그 반열에 한 발을 들이고 나는 오늘 착한 일을 했다. 나를 위한 산타의 선물을 사야 할 때다. 부푼 기대로 돌아오는 길, 잠시 경산시장엘 들렀다.


삶의 느낌표가 가득한 곳, 살아 숨 쉬는 길 위에 나는 서 있다. 웅성웅성과 북적북적, 시끌시끌과 부스럭 부스럭의 형용사가 시장의 풍경을 활발발하게 만든다. 어찌나 펄떡거리는지 동해의 등 푸른 생선이 떼로 몰려다니는 것처럼 싱싱하다. 그 물결 한 자락에 몸을 싣고 보니 고요하던 내 심장도 팔딱팔딱 요동친다.


못 보았던 가게가 우후죽순 생겼다. 삶의 비린내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 자리에 다시 새 삶을 향한 누군가가 터를 잡았다. 세상사의 본질이 거짓 없이 드러나는 시장바닥이 그래서 나는 좋다. 생존의 위로를 받는 이곳에 길게 줄을 지어 형형색색으로 나열되어 있는 이곳의 매력을 벗어날 수 없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원초적인 가격으로 때론 거칠고 무뚝뚝하게 오고 가는 현장이 더욱 정스럽다.


나도 그들 곁에서 홍합을 사고 파김치를 사고 순대를 사고 오징어튀김과 튀김닭을 산다. 크리스마스라고 덤으로 얹어주는 옛날 과자 한 줌에 나의 입꼬리가 최고치로 올라간다. 검정 비닐이 양손에 그득하다. 시장의 끝과 끝을 걸어 나오는 걸음이 낑낑댄다. 그럼에도 마음은 폴짝, 열두 살 소녀가 고무줄 넘듯 가볍다. 이토록 기분이 좋은 걸 보니 이 시장 바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이미 산타의 선물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여태 몰랐던, 아니 잊고 있었던 어떤 냄새와 풍경 속에서 나의 산타는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이미 프루스트의 마들렌 같은, 내 추억의 본능이 킁킁, 꿈틀거리며 나를 깨우고 씻기고 일으켜 나의 굽은 등뼈를 든든히 세운다. 길 위에 가득한 사람꽃들의 숨 바람에 산들산들,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더욱 가볍다.


경산에는 경산시장이 있고, 그곳에는 우리들의 산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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