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

by 글똥

어쩌다 보니, 뜨개 입문아가 되었다. 모임의 지인이 들고 온 가방의 규칙적인 무늬를 본 후부터였다. 달뜬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못하고 머릿속에 남아 나를 지배했다. 가을이 달콤한 시절이었다. 연베이지와 브라운의 조화는 매우 가을스러웠으며 그날따라 대구스타디움의 햇살은 바람을 타고 더욱 반짝였다. 어쩌면 나를 운명의 시간으로 끌어들인 것은 이 모든 것들의 환상적인 조화였다고 하겠다.

그녀로부터 소개받은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고 덜컥, 겁도 없이 이것저것 갖고 싶은 가방을 찜했다. 자수, 돗바늘, 코바늘, 뜨기의 여러 명칭을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는 일이 몇 달 이어졌다. 퇴근 후 지인을 찾아가 방법을 배우고 왔으나 하려고 보면 물음표만 더 생겼다. 물만 부어주어도 자라는 콩나물처럼 나의 뜨개도 자라길 바랐다. 수많은 날을 떴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천신만고 끝에 내 손에 쥐어진 하나의 작품을 끝으로 나는 뜨개의 세상과 인연이 끝난 줄 알았다.


'뜨개를 모르는 자는 있어도 한 번 하고 그만둔 자는 없다'. 일 년을 지나고 보니 뜨개의 삶 앞에 나는 '중독'이라는 무시무시한 낱말을 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늘어나는 가방의 수가 내 삶의 공식을 말해 주고 있었다. 독서에서 뜨개로의 전환이었다. 예스24에서 굿즈를 고르며 책의 권수를 늘리던 내가 이제 식탁과 소파에 온통 뜨개를 펼쳐 놓고 자투리 시간까지 소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할 일을 미루고 새벽까지 코를 세며 뜨개를 하다 잠자는 시간을 놓치기도 일쑤였다.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무늬 앞에 연차를 내고 모임을 갔다. 지독한 길치였으나 네비를 켜고 더듬어 찾아간 곳에서 동지들을 만났다. 중독자들의 모임 치고는 무척 명랑, 발랄, 쾌활한 자리였다. 사진과 실물의 차이와 경계를 눈으로 확인하니 내가 떠야 할 물건들이 더욱 명확해졌다. 돌아와 다시 떠야 할 가방을 점검하고 코를 계산하느라 또 새벽이 깊어져 간다. 안 쓰던 머리를 굴려 숫자를 적는 일도 기분 좋다. 늦은 나이에 무언가를 시작하고 끝맺음을 하는 것이 나를 활발발하게 이끈다.


3년 전이다. 암 수술로 병가를 내고 요양중일 때였다. 알음알음으로 내 소식을 전해 들은 후배가 전화를 했다.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지 몇 번이나 망설였다는 그녀의 주저하는 마음이 전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평소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다가 아플 때에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안부 전화를 받고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언니, 아프지 마세요'라는 짧은 문장에 내 마음의 온도가 치솟았다. 수술로 인한 건강 염려, 안심과 불안의 감정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요동치는 날에 누군가의 관심과 위로는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녀의 전화가 내게 그랬다. 건조하고 삭막한 사막에 빗줄기가 내리고 마른 씨앗에 싹이 나 보라색 꽃들이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내 안에서 순식간에 펼쳐졌다.


출근길에 급히 맡겨 두고 갔다는 물건을 찾으러 집 앞 마트에 들렀다. 알록달록 환한 꽃들로 수놓인 담요였다. 검정 바탕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하다. 마치 흑암 속에 핀 꽃들 같다.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나를 감싸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담요를 덮고 있으면 발 끝까지 포근함이 전해져 금세 아픈 것이 다 나을 것처럼 행복하다. 들여다 보면 한 땀 한 땀 코바늘로 수놓았을 그녀의 마음이 눈부시다. 내 몸과 마음을 덮고도 남을 넉넉한 그녀의 사랑에 흠뻑 빠져 나는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TV 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도 항상 담요를 덮었다.


오늘도 자다 깬 눈으로 거실을 서성이는 남편이 한 마디 거든다. "아직도 완성 못했나?". 분명 옷걸이에 주렁주렁 걸린 가방 여럿을 보았을 텐데. 이럴 때는 눈매가 서툰 남편이 고맙다. 모른 척 나는 "그러게. 초보라 그런지 자꾸 틀려서 몇 번을 풀었는지 몰라."


풀다 뜨다 반복한 뜨개가 코에 코를 물고 글씨를 만들고 무늬를 만드는 것을 보며 나와 그녀의 말을, 나와 남편의 말을 생각한다. 말에 말을 물고, 언어에 언어를 물고 관계를 만들고 삶을 만드는 일이 마치 실수와 실패를 건너 하나의 뜨개를 완성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뜨개를 뜬다. 삶을 뜨개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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