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면 아이들이 센터에 일찍 온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 종일 아이들과 함께다. 오전 출근이라 아침부터 시간에 쫓긴다. 새벽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뜨개를 뜨는 행복을 잠시 내려놓는 때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식사 시간도 바뀐다. 저녁에서 점심이다.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매일 하는 독서와 동시 필사, 그리고 창작 동시 수업을 마치고 나면 점심시간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대부분이 아침을 거르고 온다. 늦잠 자고 어슬렁어슬렁 센터에 온 아이들의 머리카락은 중력을 거스르고 사방으로 솟아있다. 곧 둥지를 틀어도 될 만큼 멋진 새집도 보이고 널찍하니 움푹 파인 자리는 고라니가 밤새 앉았다 간 것 같다.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학교에서 꼬박 오전과 오후의 한 때를 보내고 올 때는 벌써 공부에 지친 모습으로 들어선다. 그 아이들을 다시 붙잡고 문제를 풀고 영어를 하고 구구단을 외우고 독서까지 하는 것은 서로에게 버겁고 힘들다. 방학은 아이들도, 나도 쉬엄쉬엄 공부할 수 있는 때다.
내 어릴 적 방학은 매일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눈사람을 만들었다. 바람도 쉬어가는 담장 모퉁이에서 땅따먹기나 구슬치기, 공기놀이로 하루해가 짧았다. 저녁이면 군불 앞에서 또 고구마나 옥수수를 구워 먹었다. 새장 같은 건물에 갇혀 태블릿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하루를 보내는 이 아이들에게 낭만이 있을까. 삭막한 방학 풍경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잠든 나무와 시든 풀잎 사이로 조금씩 고개 내미는 새순을 찾아보라고 바깥으로 내몰고 싶다.
그래도 밥 먹는 시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반갑다. 공부를 하다가도 밥냄새가 나면 아이들은 시끌벅적 신이 난다. 공부하던 자리를 소독하고 다 같이 손을 씻는다. 코로나 19가 남긴 흔적이다. 청결한 일상이 장염과 감기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어려서부터 내 코는 냄새에 민감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입냄새였다. 아이들과 근접한 환경에서 지내다 보면 냄새를 피할 길이 없다. 다행히 코로나 19의 여파로 생활화된 마스크가 내게는 구세주 같다. 덕분에 나는 더 친밀하게 아이들의 모든 것을 살피는 어른이 됐다.
또 하나는 덜 마른 옷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다. 가끔 아이들보다 수업을 도와주는 튜터링에게서 더 자주 나기도 한다. 특히 여름이면 그 냄새는 극에 달한다. 자취하는 남자 대학생들의 어쩔 수 없는 환경이라 해도 공기 중에 짙게 배인 그 냄새는 내 온몸의 세포를 자극하고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 퇴근할 때까지 입으로 숨을 쉬며 공기와 싸우느라 내 몸은 녹초가 된다.
그러나, 자연에서 발아하는 모든 냄새는 내게 향기롭고 구수하다. 농사가 끝난 논밭의 귀퉁이에 모아 둔 거름과 두엄이 그렇다. 봄밭에서 올라오는 새싹들의 냄새, 아지랑이와 함께 피어오르는 땅 위의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의 냄새가 있다. 살아있는 것들의 냄새는 삶의 의욕을 북돋운다. 코로, 눈으로 맡는 냄새는 정신을 지배하고 상상의 냄새로 확장된다. 겨울의 매서움을 뚫고 피어나는 붉은 동백과 매화, 노란 산수유를 보면 나는 더욱 생의 기운이 강해진다. 계절의 냄새를 뿌리에 가둔 후 꽃으로 피어 향기를 남기는 일은 땅, 바로 위에서도 일어난다.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흙을 뚫고 나와 초록잎을 펼치는 냉이를 만나는 것도 이 계절에 할 일이다.
1월의 끝자락에서 냉이된장국을 먹는다.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만다. 단맛 나는 겨울파와 마늘, 시원한 무와 함께 펄펄 끓여 낸 냉잇국 한 그릇에 겨울이 녹는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냉이는 밥상의 꽃이 되어 향기를 남긴다. 이제 곧 봄이 올 것이라는 것을, 냉잇국 한 그릇 먹고 나면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