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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똥 Apr 03. 2024

봄날의 수인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기 싫다. 마음과 마음이 부딪친다. 일어나야 한다는 마음, 더 누워 있고 싶다는 마음. 5분을 더 미적거리다 결국 일어났다. 양치도 귀찮아 가글로 대충 입 안을 헹구고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지하주차장이 웬일로 헐빈하다. 봄맞이 주차장 청소라는 팻말이 보인다. 많은 이가 미리 다른 곳으로 주차를 해 두었나 보다. 덕분에 이중 주차가 없어 편하게 차를 뺐다. 기분 좋게 코너를 돌아 입구 쪽으로 오니 바닥에 물방울이 듬성하다. '얏호, 비가 오는구나!'.


일어나기를 참 잘했다. 계속 누워 있었다면 좋은 풍경을 놓칠 뻔했다. 새벽의 어스름에 빛나는 벚꽃 잎이 빗방울에 젖어 더 반짝인다. 검은 아스팔트도 비에 젖어 반짝인다. 10여 분의 운전길이 소확행이 되는 순간이다. 너른 마당이 벌써 차들로 붐빈다. 우산을 손에 들고 후드티의 모자를 쓰고 걷는다. 이런 새벽에는 봄비 정도는 맞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봄을 향한 나만의 예의이며 친근함의 표현이다. 4월의 봄비가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부작사부작 적당히 젖어든다. 귓가에 들리는 비 떨어지는 소리는 심금을 울리는 환상의 소나타다. 행복과 기쁨을 수학의 공식으로 나타낸다면 바로 무한대다.


새벽을 깨우는 소리가 알람인 줄 알았더니 비였다. 내 마음의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늘 그렇다. 세상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요란하여서 여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다른 어떤 소리를 듣기가 힘들다. 샌드위치처럼 봄날의 사이를 용케 찾아 해와 비는 내린다. 맛있다. 반짝이는 해도, 주룩주룩 내리는 비도 마음을 살찌우는 풍성한 식탁이다. 봄날의 싱싱한 재료다. 편식 없는 4월의 봄날,  해와 비 사이에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따라 하루가 또 흐른다.


내일 새벽이면 나는 또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세상의 신호에 몸을 묶어버릴지도 모르겠다. '5분만 더'라는 뇌의 지시에 갈팡질팡할 수도 있겠다. 새벽의 이 비를, 소리를, 풍경을 오래 바라본다. 내 눈을 거쳐 마음에 이르러 드디어 돋을새김의 낙관이 되기를. 날마다 수인이 되어도 좋을 4월. 오늘의 수인 번호 0403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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