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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한 잔

*장마가가득한유월의일요일아침은 모든것이사랑이에요

by 글똥


비 오는 유월의 일요일 아침

나는 빨간 우산을 쓰고 중산지로 가요

팔각정엔 밤새 나눈 연인들의 이야기가 비를 타고 또또르르 아직도 흘러요

큰 새 한마리 날개를 펼치더니 덥석 뭉게구름을 안아요

검은새는 빗속을 날아도 여전히 검기만 해요

장화를 신고 빗속을 걸어도 여전히 빗속인 것처럼

그래서 비오는 유월의 일요일 아침은 모든 것이 그대로 아름다워요


하늘이 축제를 시작했거든요

머리 위로 팔을 들면 시원 달콤한 구름솜사탕이 냉큼 몰려와 손끝에 닿아요

폴짝 뛰면 구름같은 안개가 두둥실 머리 위에 얹혀요

빨간 우산이 걸어가자 투두둑투두둑 발목을 노래해요


솜사탕 구름이 성암산 꼭대기에 둥실

바람에 흔들거려요

초록이 내어 준 꼴짜기마다 한 웅큼씩 뜯어 놓은 구름

근두운처럼 숨었어요

여의봉만 흔들면 구름 한덩이 쏜살같이 달려올 것만 같죠

빨간 우산을 펼쳤더니 하얀 구름이 무릎 주위로 모여들어요

풀쩍 뛰어 오르면 나를 태우고 호수 한 바퀴는 거뜬히 돌 수 있을 것 같은데


담장 아래 능소화는 이제 마구 피어나기로 했어요

석류꽃도 원숙한 아름다움을 위해 꽃잎을 펼치기 시작했구요

유월의 시간이 잠깐 내 손을 꼬옥 잡아 주었어요

나는 손가락 사이로 물이 흘러 넘치는 줄도 모르고

장마를 부탁한

맨 몸의 시간을 꼬옥 껴안았지요


장마가 가득한 유월의 일요일 아침은 모든 것이 사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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