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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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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똥 Oct 17. 2024

새벽 한시 오분쯤


그것이 모닝커피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난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또 닥친 하루를 잘 살아내자는

내가 내게 건네는 인사 같은 것이라 해 두자

괜히 폼 한 번 잡자고 찻잔에 받침을 굳이 말이야

그리고 뭐, 한 모금씩 천천히 우아하게 홀짝이는 거지

대백마트 가판대에서 건진 만 원의 잠옷을 입고

겨우 마시는 믹스커피의 시간은 아마도 오전 한시 오분쯤


코골이, 이갈이 남편은 안방에 갇힌지 오래

불 꺼진 아이들의 방도 아침까지는 안녕할 시간

주방의 나는 벌써 퇴근하였고

청소와 빨래와 그외의 나도 서둘러 돌려보냈지


내가 나를 부려 먹고

내가 나를 시켜 먹고

내가 나를 혼내 놓고는

내가 내게 억울해서 말이야

내가 퇴근한 빈 주방에 슬며시 물을 올리고

나 몰래 커피를 타서

느긋하게 한모금씩 마시는 거야

내가 나를 위로하며

내가 나를 다독이며

내가 나를 칭찬하며 말이지

그리고

지난 하루를 잊고

또 하루를 시작하는 거지


기억해

내 모닝커피의 시간은 모두가 잠든 밤, 새벽 한시 오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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