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가 내게로 왔다

미하엘 엔데, 비룡소

by 글똥

김만준의 노래를 듣는다. 얼마나 듣고 불렀던지 이제 운전하다가 샤워하다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그것도 연습이 되었던지 음정도 제법 정확하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1978년 대학가요제 1회 수상을 한 <모모>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좇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갯짓하며~


미하엘 엔데, 그는 독일 출신이다. 그는 1970년 <모모>를 낳았다. 그의 나이 마흔 즈음이었다. 초현실주의 화가였던 부모의 영향도 없지는 않았을 그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나도 한때는 <모모>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모든 사람이 욕심을 좇아 자신을 잃어가는 순간이 슬펐던 작가는 <모모>를 이 세상에 보내 성큼성큼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의 걸음을 문득 서게 만든다. 그리고 행간과 자간의 숲에서 잃어버린 길을 찾도록 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걷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한 번 더 고민하게 한다.


모모는 여덟 살 여자 아이다. 사실은 백 살도 넘었다. 넝마를 걸치고 짝짝이 신을 신고 광장의 조그만 동굴에서 산다. 모모의 능력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냥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잘 들어준다.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 소녀는 우리 마음에 언제나 살아 있어야 하는 동심을 말해 준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은 언제나 동심을 앞선다. 회색 신사들이 뿜어내는 연기가 우리 마음에 가득 차 있어도 깨닫지 못한다. 모모는 우리가 꽃을 보고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할 때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다. 힘을 얻는다. 그러나 나는 기기처럼 혹은 베포처럼 이미 많은 시간을 잃어버린 듯하다.


<모모>를 읽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숲으로 갔다. 오랜만의 겨울 산책이었다. 산길을 걷는 동안 찬바람이 내 안의 회색 연기를 가져갔다. 깊이 들어갈수록 나는 점점 맑아지고 투명해졌다. 이 좋은 걸음을 언제나 와 보고서야 후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도 와야겠다는 굳은 결심조차도 숲을 빠져나가면 곧 잊어버린다. 세상의 흐린 겨울 하늘은 나의 모든 신경을 장님으로 만든다. 회색 신사들이 도처에 널려 있음이다.


<모모>를 다시 읽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미하엘의 문장들내 마른 뼈에 살을 붙이고 식은 혈관에 따뜻한 피가 돌게 했다. 그의 글숲에서 나는 말괄량이 삐삐도 만났고, 피터 팬과 톰 소여, 허클 베리 핀과 빨간 머리 앤, 꼬마자동차 붕붕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도 만났다.


자유하고 싶은 아이들과 매일 씨름하는 가운데 있다. 방학이라 아이들은 종일 센터에서 생활한다. 시끄럽고 소란하기만 한 아이들 덕분에 나는 퇴근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문득 저 아이들 속에 숨어 있는 <모모>가 보였다. 계산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과 현실에 최선을 다해 놀이만 하는 아이들이야말로 광장의 모모, 이 세상을 밝히는 모모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도 모모처럼 저들 속에 함께하는 것이 나의 일을 즐기는 방법이었다. 문제 하나 더 푸는 것보다, 1분 더 붙들어 두고 학습 시간을 엄수하는 것보다 모모처럼 얘기 하나 더 들어주고 눈 한 번 더 맞춰 주고 한 번 더 안아주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그새 또 잊어버리고 있었다. 시스템에 갇혀 지혜롭지 못했던 시간은 서로를 매우 피곤하게 했던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소설에서 인간 문명에 대체하는 유일한 무기는 사랑과 유머와 예술이라고 했다. 큰 끄덕임이다. 이 세 가지가 <모모>를 관통하고 있었다. 시간을 벌어 모모를 살리려고 열심히 비질을 하는 늙은 베포의 사랑, 잃어버린 거북 카시오페이아를 다시 만난 기쁨의 표현에 능글맞은 거북의 유머스러운 한 마디, 시간의 꽃을 들고 세상을 구한 모모의 용기 있는 행동, 마침내 어이없이 사라져 버린 회색의 신사들. 강적은 더 큰 강적으로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움이, 순수함이, 연약함이, 맑음이 그것을 지배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끊임없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를 건져 낸 것도 <모모>다. 볕 좋은 자리에 나를 가만히 널어 본다. 얼마나 다행인가. 얼마나 감사한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미하엘의 소녀, 모모가 오늘은 내게로 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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