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에는 ㅋ이 산다

by 글똥

오래 전,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온 드라마에서 설산의 풍경을 보았다. 자살하기 위해 온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위험하고 아찔한 스토리였다. 육아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그때,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던 그곳을 꿈꾸며 나는 막막한 현실을 위로받았다.


여배우의 시크한 매력 때문에 더 빠져들었던, 그 드라마의 배경은 북해도였다. 소리 내어 보면 “부캐도”라고 들리는 일본 최북단의 섬. 목울대를 타고 세상으로 나오는 ㅋ의 느낌이 무기력하고 답답한 내 일상을 밖으로 꺼내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것 같아 나는 자꾸 혀끝에 ‘부캐도’를 매달고 힘들 때마다 수시로 되뇌었다.


그 덕분인지 지지난 봄, 드디어 친정 언니들과 그 섬을 가게 되었다. 춘삼월의 끝자락에서 만난 북해도는 아직도 내 키를 넘는 눈이 산과 도로에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는 것도 좋았고, 끝없이 펼쳐진 하얀 지평선을 눈이 부시도록 바라보는 일도 즐거웠다.


ㅋ은 북해도를 다니는 동안 쉴 새 없이 따라다녔다. 자작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다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흩어져 있던 모음들이 ㅋ옆에 붙어 “캬”, “캬”, “캬”거리며 허공으로 날았다. 언니와 나의 목구멍에서 자꾸만 ㅋ이 자랐다. 북해도의 모든 풍경에 살아 있었던, 숨어 있었던 ㅋ이 나의 걸음을 쉴 새 없이 환영해 주었다.


ㅋ을 발음하자면, 목에 힘을 주어 소리를 밖으로 쏟아내어야 한다. ‘북해도’에는 살아 있지 않은 ㅋ을 소리 내어 말하면 비로소 생명을 얻어 그 낱말도 더욱 강렬해진다. 파열음이 되는 ㅋ의 속성은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과 비슷하다. 가만히 참고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주부로서의 지난 내 삶처럼.


북해도의 3월은 이른 봄이면서 아직 겨울이다. 멀쩡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눈이 내린다. 그것도 펑펑 쏟아진다. 아사히 맥주 공장 견학을 위해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이었다. 앞 팀의 견학이 진행 중이라 일행들은 공장 안에 준비된 휴게소에서 쉬고 있었다. 언니들과 나는 준비한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푸르게 빛나는 전나무 사이에 눈이 쌓이고 마당은 어느새 하얀 들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세상은 둘로 나뉘었다. 세 명의 여자가 눈을 맞으며 앞마당 소회를 즐기고 있다면, 창 너머 휴게실에는 중년의 남녀들이 창밖의 원숭이 구경하듯 눈 내리는 풍경에 갇힌 우리 세 자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라 하였다. 언니들과 나는 일상, 그 너머의 세계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 곳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눈밭을 구르며 웃고 떠드는 행위가 가능했을까.


흔히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추억과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고 한다. 북해도의 여행은 삶의 귀퉁이 어딘가에 잠재워 놓았던 소녀 감성이 한꺼번에 펼쳐져 빛나는 순간이었다. 빙글빙글 춤을 추며 남긴 발자국 끝에서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솟아올라 세 자매의 몸을 감쌌다. 창 너머 그들에게 원숭이여도 좋았다. 하나의 거리낌도 없이, 시선의 의식도 없이 우리는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놀았다.


여행을 온 목적 자체로 엔돌핀이 넘쳐났다면, 오늘의 눈꽃 놀이는 다이돌핀의 생성이 가득해졌다고 해야겠다. 엔돌핀의 사천 배 효과를 내는 다이돌핀은 자연에서 감동의 상태가 최고점에 이를 때 생긴다고 하니, 오늘 우리는 임계점을 넘어 신선놀음을 한 것과 다름없다.


북해도를 계획하고 우리는 부캐도를 여행했다. 언니들과의 여행은 그래서 더 값지다.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낯설고 힘들었던 날을 버틸 수 있도록 언제나 힘이 되어 준 존재가 그녀들이기 때문이다. ㅎ처럼 살았던 나의 지난 삶은 아내와 엄마의 자리가 컸다. ㅎ은 나를 잊고 살아야 했던 날들의 묵음이었다. 파열음 ㅋ처럼 내 안의 잠든 ㅎ들을 깨워 제대로 된 나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준 언니들이 지금 나와 함께 있다.

파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존의 생활 방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삶의 새로고침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어디로 사라지고 다른 이름만 가득한 현실을 바꾸고 싶으나 스스로의 힘으로 헤어 나오기 힘든 일상의 굴레, 누군가 손잡아 주면 손쉽게 노선을 바꾸어 행복과 만족이라는 긍정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때때로 인생은 파열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작용하는 파열이 강렬할수록 우리는 더욱 나다워지지 않을까 싶다. 들끓는 가래침을 ‘칵’하고 뱉어내는 것처럼 내 삶의 가래 같은 것들을 씻어내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진정 나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