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식

by 글똥

코로나로 세상이 시끄럽다. 집에만 있자니 답답하여 호미를 들었다. 봄은 벌써 저만치 와 있고, 하늘과 땅, 모든 곳에서 겨울 흔적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껴입은 외투를 뚫고 들어온 바람이 기분 좋게 몸을 감싼다. 차에 시동을 걸고 10여 분을 달려 융단처럼 깔린 연초록의 세계로 몸을 들인다.


냉이를 캐려면 일단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냉이는 쭈그리고 앉은 자에게만 정확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겨우내 자란 뿌리의 끝이 손끝에 딸려 올라올 때 비로소 제 몸에 새긴 향을 사방으로 퍼트린다.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리며 폐부 깊숙이 향을 밀어 넣는다. 그 향기에 놀란 세포가 혈관을 타고 빠르게 휘돌아 잠자는 몸의 구석구석에 소식을 전한다. 경칩에 개구리가 깨어나 첫울음 터트리듯 내 몸도 ‘봄, 봄’하며 기지개를 켠다. 그때부터 냉이 캐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즐거운 봄이 내게로 가득 온다.


두어 시간, 냉이를 캤더니 배가 고프다. 휴대용 의자에 앉아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라면이 익을 동안, 자연스레 풍경에 젖는다. 과수원 옆의 율지(栗池)는 갈대와 부들의 물기 빠진 잎들이 물 위의 키를 한 자나 더하고 있다. 갈대 사이의 오리들을 본다. 무심한 듯 물길을 가르며 나아가지만, 보이지 않는 물속의 물갈퀴는 얼마나 분주할 것인가. 삶의 현장에서 날것으로 사는 내 모습처럼 분주할 물 속 풍경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허나, 그 날들이 있어 오늘 수면 위의 풍경 같은 시간이 내게로 온 것이 아니겠는가.


이따금 율지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후드득 날아오른다. 세상의 번뇌는 아랑곳없고 시간과 공간의 공식대로 봄을 맞이하는 자연의 모습. 천 년의 시간 동안 제 힘으로 한 치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했던 식물이지만, 몸속의 물기를 다 빼고 겨우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이지만,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하는 것은 저들이다. 물에 어리는 잔상에도 봄기운이 저렇게 충만하다니.


도시의 삶이 갑갑할 때마다 나는 초록의 자연으로 걸음을 옮긴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바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헛된 희망이나 끈질긴 욕망으로 고통당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라던 새뮤얼 존슨의 『라셀라스』의 글귀가 마음을 두드린다. 어쩌면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여길 찾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느슨해진 생각의 틈으로 삶의 긴장이 풀린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 과수원, 은빛 기둥으로 줄지어 선 복숭아나무는 바라만 보아도 아름답다. 시선의 끝에 소실점의 미학이 있다. 하늘로 솟은 가지 끝을 보노라면 푸른 물 든 하늘이 머리 위로 방울방울 떨어질 것 같다.

초록의 들이 주는 평온함, 다가올 봄날의 황홀한 상상과 새떼들의 움직임을 근심 없이 바라보는 시간, 삶의 숨구멍 같은 이 시절을 나는 행복이라고 명명해야겠다. 불어버린 컵라면을 먹으며 율지를 살핀다. 자맥질하던 오리들은 보이지 않고 푸드덕거리던 새 한 마리, 갈대숲을 흔들며 봄날의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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