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곡지 별리
꽃분홍 봄을 시샘하듯 비바람이 몰아친다
복사꽃 다 지기 전 퇴근길을 재촉한다
꽃은 이미 떨어지고 산허리엔 구름꽃 만발하다
사람들 다 떠나고 빗소리만 남은 자리
어둑서니 숲길 조심스레 내딛는다
곡선의 낭만은 사라지고
허공을 맴도는 추억
붉은 복사꽃잎 여린 봄비 구슬프다
유록의 애벌레들 꿈틀거리는 버드나무 아래
애써 등을 켜는 내 마음 어스름 볕뉘
산그림자조차 서서히 발끝에 닿는 저녁
오래 보아온 봄의 길
찰나에 사라진 봄의 길69
데크 아래 잠든 풍경들을 조문하며
또박또박 한 바퀴를 돌았다
언제든 찾아만 오면 내 고비의 삶에
든든한 징검다리가 되어 준 반곡지가 왜
망나니에게 댕강 목 잘린 사형수처럼 오늘 함묵하는지
욕망에 잘려 나간 반곡지가
직선에 갇혀버린 반곡지가
빗 속에서
말없이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