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 한 잔

by 글똥


병원 가는 날

콩을 간다

가는 길에

순서를 기다리며

홀짝이기 좋은 커피


애써 손으로 간다

제 몸을 다 부셔 가며

온 향기 발하는 콩

뜨거운 물에 끓어올라

제 몸의 모든 것

아래로 흘려보낸다


인생은 쓴 맛 아닌가

한 모금에 위로를 전하는

기특한 커피

콩의 희생


나는 누군가에게

한 줌의 콩이 된 적이 있었던가

한 줌의 가루가 된 적이 있었던가

온전히 갈린 콩의 최후를

찌꺼기라고 말하지 말라


기꺼이 가루가 된 콩

뜨거운 물에 다시 태어나는 콩

내 몸 속 깊숙한 기쁨으로

발아하는 콩

마침내 혈관을 타고 한 생을 여행하는 콩

오늘도 나는 콩 앞에서 거룩한 아침을 맞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반곡지 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