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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연 Mar 15. 2017

모정의 눈물

막내야  우리 막내야..

몇 월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전이었는지 오후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갑자기 강원도에 살고 계시던 막내 작은아버지가 그만 파도에 타고 있던 배와 함께

실종되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함께 타신 분들은 모두 살았지만 막내 작은 아버지만 행방불명이 되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계속 안절부절못하시고 집안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무거운 공기에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이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쯤으로 기억하는데 막내 작은 아버지를 본 것은 1년 전쯤 어느 명절날이었다.

유난 이도 키가 크고 얼굴도 하얗고 인상이 참 좋은 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삼 형제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잘 생겼다고 늘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었다.


할머니는 평소 언제나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맛있게 연기를 내뿜으며 막내 작은아버지에 대한 자랑을

뿌듯한 미소와 함께 나에게 한참을 이야기하실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어린 나였지만 할머니가 막내 작은아버지를 참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데.. 그런데..


아버지가 작은아버지의 비보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할머니께 말씀드린 순간 할머니는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셨다. 잠시 후 방안에서는 "아이고아이고.. 우리 막내 어떡해 아이고.. 아이고" 하는 통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들어가셔서 위로해 드리고 했지만 통곡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마치 아이가 돼버린 것처럼 온몸을 몸부림치며 할머니는 그렇게 몇 시간을  우리 막내야를 외치며 울고 또 우셨다.


지금까지 그렇게 씩씩하고 여장부다운 , 나무처럼 강한 할머니가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나는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 이때 처음 나는 저 깊은 마음속에서 할머니에 대한 연민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슬픈 감정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지금 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생각해 보면 나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자식을 잃은 마음이 오죽했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하는 짐작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아드리고 위로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막내 작은아버지 친한 친구분의 꿈속에서 작은 아버지가 바닷속 어느 위치에 있으니

찾아달라는 꿈을 꾸고 나서 작은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고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할머니의 슬픔이 언제까지 이어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는 다시 예전처럼 힘든 밭일을 나가시고  일당으로 받은 돈은 손자 손녀를 위해 여전히 쌈짓돈을 열어주시고 곰방대에 담뱃잎을 말아서 하얀 연기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내시곤 하셨다.  할머니의 곰방대는 할머니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 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기쁠 때는 콧노래와 함께였고 슬플 때는 뻐끔뻐끔 담배 피우는  소리와 함께 먼산을 응시하며

담배연기를 높이 아주 높이 뿜어 보냈다.


어릴 적 엄마가 직장을 다니시기 때문에 할머니와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는 시험을 잘 봐도 할머니에게 먼저 자랑을 했었고 준비물이나 학용품이 필요하면 할머니에게 먼저 말씀드려 용돈을 타는 경우도  많았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따뜻한 고구마나 빵을 직접 만들어서 갖다 드리는 분도 할머니였다.

경우가 바르고 강직했던 할머니는 언제나 곧고 경우가 바른 사람으로 주위에서도 통했다.


추운 겨울날 발 시리지 말라고 운동화를 연탄불 위에 올려놓았다가 아침에 나갈 때 신고 갈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는 할머니는 오로지 자식 걱정 손자 손녀 걱정에 할머니의 얼굴은 언제나 구릿빛이었고 언제나 옷은

무색의 일하기 편한 면으로 된 한복 같은 것이었다.


또 언제나 부지런하신 할머니는 예전에 집집마다 앞마당에 있었던 물을 퍼 올려 사용하는  펌프로

차가운 겨울에도 직접 물을 퍼올려 그 많은 빨래를 혼자 다 하시곤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나가서 펌프질을 왜 자주 해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에 밀물 같은 후회감이 끝없이 밀려오기도 한다.

특히 겨울에는 나가면 춥고 펌프질도 힘들고 손이 시리다 보니 몇 번을 할머니가 부르셔도 꾀를 부렸던 것이

두고두고 지금까지 후회가 된다.


할머니의 그 끊임없는 열정과 강함과 부지런함은 어디서 샘 솟는 걸까?

도대체 할머니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갑자기 그리움과 후회가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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