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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연 Mar 17. 2017

꿈속에서

산나물 찔레꽃 할미꽃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그중 가장 기분 좋은 추억은 바로 산나물을 캐러 함께

산에 올라갔던 기억이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산에 산나물을 캐러 간다고 하시면서 늘 나를 데리고 가셨다.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는  산나물을 담을 천 주머니를 가지고  분명 콧노래를 부르시며 앞서서 올라가셨다. 


내가 살던 동네는 서울이지만 변두리라 그런지 조금만 마을을 벗어나면 논밭이 있고 광산이라고 하는

큰 산이 있었다.

일제시대 때 일본군들이 광물을 찾기 위해 파놓은 광산이 방치되어 있는 곳인데 동굴 안에 들어가면 한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나도 아이들과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도시락을 싸들고 자주 놀러 갔던 장소기도 하다.  


예전에 큰 놀잇감이 없었던 시절 광산에 방치되어 있던 동굴은 그 동굴 안에 괴물이 산다느니 한번 깊숙이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로가 있다느니 하는 우리들의 상상력이 자라는 공간이기도 했다.


할머니도 이 산에 오시면 마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얼굴 표정이 그렇게 밝고 천진난만할 수가 없었다.

산나물을 채취하며 나에게 이것은 "방풍나물~ 이것은 취나물~ 이것은 찔레꽃~"

마치 요즘 어린 친구들이 랩을 하듯 끊이지 않고 산나물 이름을 줄줄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가끔 어린 찔레꽃을 꺾어서 껍질을 벗겨주시고 먹어보라고 한 적도 많았는데 지금은 그 맛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당시 나는 달콤한 맛을 느끼며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난다.

그 산은 산나물뿐 아니라 보리수 열매와 산밤 등 맛있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서 먹으며 따며

한 보따리를 품에 안고 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할머니는 산나물을 캐러 가실 때는 꼭 주먹밥이라든지 먹을 음식을 싸가지고 가셨는데 한참 산나물을 캐다가

시장하시면 아무 곳이나 앉아서 바리바리 싸온 음식들을 벌려 놓으신다.

그리고 먹기 전에 반드시

고수레~~~ 고수레~~ 고수레~~ 하고 세 번을 외치시고 음식을 떼어 던지시고

그다음 나를 먹이고 나서야 시장기를 달래며 음식을 드셨다.

나는 "할머니 고수레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할머니는 " 먹기 전에 고마운 산에게 먼저 드시라고 하는 거란다"

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양이 적던 많던 자연에 먼저 음식을 던지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굳이 말로 가르치지 않으셔도 나누고 베풀고 자연의 고마움을 느끼라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셨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산나물을 매우 좋아한다. 각종 산나물 종류를 집에 가지고 와서 살짝 데쳐서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싹싹 비비면  그야말로 꿀맛보다 더 맛있었다.  

지금도 가끔 나물 종류를 데쳐서 쓱쓱 비벼먹으면 그 어린 옛날로 돌아간 듯 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이다.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날은 언제나 할머니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콧노래가 그치지  않았고

할머니가 피는 담배 연기가 그렇게 구수할 수 없었다.


산에 올라갔다 내려온 날에는 할머니의 손과 앞치마에서  찔레꽃 냄새며 취나물과 이름 모를 산나물 향기가

저녁에 잠이 들기 전까지 내 코끝을 떠나지 않고 간지럽혔다.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할머니와 함께 초록이 물든 산속에서 보리수가 가득 열린 나무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꿈을 꾸곤 했다.

할머니는 논밭 가득한 옛 고향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밭일을 하시고 각종 과일들을 따던 그 정겨운 고향집

꿈을 꾸고 계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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