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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연 Mar 24. 2017

석양이 지던 날

갑자기 찾아온 이별

지금도 나는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데 어릴 적에도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웠다.

내가 키웠다기보다는 엄마가 어디서 강아지를 데리고 왔는데 그 강아지는 할머니와도 각별한 관계였다.

낮에 집에 사람이 없을 때 할머니는 강아지에게 장난을 걸어주시고 먹이를 챙겨주셔서 할머니를

무던히도 잘 따랐다.

어찌나 많이 장난을 치셨는지 할머니의 털스웨터  팔꿈치 부분이 모두 뜯겨서  구멍이 날 정도이다.  

강아지와 장난치던 할머니의 모습은 그 순간만큼은 정말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럽고 평화로워 보였다. 

 

이렇게  인자하시고 손자 손녀에게 끔찍이도 애정을 주시는 할머니가 가끔 미울 때가  있었는데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를 야단치실 때이다.  


너무 어릴 때라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큰 문제가 아닌 소소한 생활 속의 불화로 인한 것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흔히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고부 갈등인 듯싶었다. 

 

그녀들이 화가 나면 약간의 말타툼이 오가기도 하고 급기야 그녀들은 그녀들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화를 삼키기도 했다.


할머니는 곰방대 담배를 피우시며 엄마는  쌓인  설거지를 하는 것으로 그런 상황은 곧 종료되기도 했지만

두 분 모두 나에게  너무 소중한 분들인데 왜 그러실까 하는  안타까움에 속상하기도 했다

.

그래도 직계인 엄마에게 질책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나에게는 그때만큼은 미운 할머니 일 뿐이었다. 

 

가족이라는 것은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라고 그 시점이 지나고 나면 할머니와 엄마는 함께 고추장도 담그시고 된장도 담그시고 할머니가 외출하실 때면 할머니의 그 긴 머리를 쪽을 틀어  비녀를 꼽아드리는 천상

딸 같은 며느리와 인자한 시어머니로 돌아가기도 했다.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해지고 가을이 오고 또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 몇 번 되풀이되고

나는 어느덧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내가 첫 교복을 맞춰 입던 날 할머니는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교복을 입고 서있는 나의 모습을 그렇게

흐뭇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볼 수 있을까?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가방을 들고 학교로 가는 날이면 창문을 열고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계셨다고 한다.


나의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시며 나를 그리 흐뭇하게 보고 계셨을까?

할머니는 어떤 새로운 앞날을 예측하시기라도 하신 것인가?

아니면 먼 타지에 올라와서 아무 탈없이 자라 주는 손녀딸이 너무 대견스러우셨을까?


어느 날부터인가 기운차고 당당했던 할머니가 점점 기운이 떨어지시는지 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아졌다.

며칠을 식사를 못하시더니 심지어 몸져눕게 되셨고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날마다 미음과 죽을 만들어서

드시게 하셨다.

항상 활기차던 할머니께서 누워계시는 모습은 나에게 매우 어색하고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점점 말도 못 하시고 잠만 주무시는 할머니는 내 이름도 잘 부르지 못하고 그저 슬픈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엄마의 한숨은 나날이 늘어났고 엄마는 뭔가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듯 할머니의 짐들을 조금씩

정리해 놓기도  하셨다..


나의 청춘과 사춘기의 시작은 이별을 아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유난히도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였던 날.. 할머니는 그렇게 나의 곁을 떠나셨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속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으로 터져버릴 것만 같은데 눈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일일이 이름을 말하며 마지막 인사를 시켜주셨지만

나는 반쪽이 된 할머니의 얼굴과 앙상한 모습이 낯설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있기만 했다.



이렇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셨던 할머니는 하늘의 바람과 구름이 되신 듯 더 이상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이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태어나서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다. "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죽으면 많이 아플까? 우리 할머니는 어디로 가신 걸까?


나의 사춘기도 어렵고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준비 없이 찾아온 낯선 이별 때문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무리 만나고 싶고 보고 싶어도  죽음은 다시는 만나볼 수도 없고 만져 볼 수도 없게 만드는 것이구나..

그래서 죽음은 정말 무서운 단어이고 사실이라는 것을 나는 할머니와의 이별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유난히도 붉은 노을과 석양이 지던 그날  할머니와의 추억들과 사랑도 사라지고

내 인생의 첫 번째 이별은 이렇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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