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 이유
1남 1녀를 가진 부부의 주말은 종종 단조롭다.
아이들은 만화 영상에 코를 박고 열중하고 있었고, 나와 y는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책을 읽었다.
오전 내내 그런 비활동적인 시간들로 채웠더니 너무 따분하고, 쳐져서 스멀스멀 몸이 녹는 듯했다.
"애들 잘 보고 있으니까, 잠깐만 나갔다 올까?"
y의 파격적인 제안에 잠깐 놀랐다. 하지만 너무나 당기는 제안에 잠시 주춤했다.
엄빠 없는 줄도 모르고 영상에 빠져있을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지만,
"그... 럴까..?"
결국 이성보다는 마음의 소리로 답을 해버렸다. 아이들에게 단도리를 시키고, 나갈 준비를 했다.
"저번에 입은 정장, 드라이도 맡기자."
정장을 챙겨 들고 y와 나는 가볍게, 후다닥 문 밖을 나섰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제법 바람도 선선하고 시원했다. 춥지는 않았다. 빠른 걸음을 걸으며 우리는 세탁소를 찾아갔다. 평소에 자주 찾아가던, 집 맞은편에 있는 세탁소는 주말이라 문을 닫았다. 주변에 다른 세탁소가 어디에 있나 기억을 더듬어갔다. 몇 미터 떨어진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세탁소가 떠올랐다. 다시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세탁소를 찾으러 갔다. 역시나 문을 닫았다.
y는 휴대폰으로 주변에 다른 세탁소를 검색했다. 또 다른 세탁소를 찾았는지 y는 거침없이 방향을 틀어 다시 길을 앞장섰다. 길눈에 밝은 y는 지도를 한눈에 훑어보고는 곧 잘 찾아간다. 길치에 방향치인 나는 그런 y가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과 반대방향으로 다시 갔다. 평소에 매일 걷던 길거리, 세탁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거리로 휴대폰 속 지도는 우리를 안내했다.
"와.. 저기 건물 위층에 세탁소라고 간판이 있네!"
"너무 옛날 간판 아니야? 영업 안 하게 생겼는데...."
거침없이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편, 수수께끼 가득한 장소를 탐험하는 듯한 기분으로 따라 들어갔다.
어둡고 낡은 건물 안에 세탁소를 가리키는, 낡고 빨간 안내판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칙ㅡ 칙 ㅡ
"안녕하세요~"
빽빽이 옷이 숲을 이루고 있는 작은 가게 안에 노부부가 있었다. 조금 따로 떨어져 앉아 할머니는 다리미질을 하고 계셨고, 할아버지는 TV를 보고 계셨다. 할머니의 능수능란한 다리미질로 풍기는 뽀얀 냄새와 하얀 연기가 가게 안을 가득 매웠다.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 가수의 구성진 노래가 TV에서 흘러나왔고, 아무 대화가 없는 두 부부는 그 텔레비전을 보며 함께 피식피식 웃음을 지으셨다.
뽀얀 냄새와 의외의 만남이 기분을 몽롱하게 했다.
y는 말했다.
“이 곳에 세탁소가 있는지 몰랐어요. 주말에도 영업하는 곳을 찾아왔어요.”
할아버지는 y와 나를 쓱 보더니 “어디서 오셨어?”라고 물으셨다. 우리는 길 건너편 어느 건물에서 산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대번에 어느 건물, 어느 위치에 있는지 단번에 알아맞히셨다.
“우리가 여기서 25년을 살았어. 이 동네에 뭐가 있고, 누가 사는지 다 알지.”
“와.. 그렇게 오래 있으셨는데, 저희가 몰랐네요.” 다림질을 하시던 할머니는 놀란 우리를 보고 그것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오래된 세탁소 건물 안을 구석구석 훑어보았다. 오래되어 낡은 물건들이 눈길을 끌었다. 세월이 고스란히 배인, 두 분의 손때가 묻은 기구들과 곳곳에 놓여있는 잡다한 물건들, 천장을 다 덮을 정도로 빽빽하게 걸려 있는 옷 무더기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을 이 작은 공간에서 노부부는 둘만의 인생을 차곡차곡 성실하게 쌓아가고 계셨다. 정장을 맡기고, 가게를 나서면서 나는 y에게 말했다.
"수많은 돌멩이 속에서 특이한 돌멩이를 찾은 그런 기분이야ㅡ"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낡고 오래된 건물 2층, 그 미지의 공간에서 세탁소라는 목표물을 발견하고 무사히 정장을 맡긴다는 거대한 미션을 완수한 우리는 맨 인 블랙에 나오는 두 명의 남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유유히 건물 밖을 빠져나왔다. 조금은 자유 한 기분상태로 손을 잡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새로 오픈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기로 했다.
"여보, 나중에 애들 좀 더 크면, 애들은 두고 여보랑 나랑 같이 동네 주변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러자.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아."
"그러려고 결혼한 거 아니야?"
"어? 응??!!!"
나는 당연히 그가 ‘예스’라고 대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되물음에 당황했다. 그러려고 결혼을 한 거 아니냐고? 그 말을 잠시 생각하니 굉장히 담백하고 로맨틱한 말이라고 느껴졌다. 그렇지. 사랑해서, 함께하는 것이 그저 좋아서, 오래도록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싶어서 결혼을 했지. 이 당연 한걸 잊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부모라는 이름에 갇혀 자꾸만 잊어버린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는 연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세탁소의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의 미래를 그려본다. 모든 부부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 묘한 감동이 스민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하는 평생의 단짝 친구이자, 다른 누구보다 특별한 애정이 있는 사람. 부부라는 관계가 이상적인 관계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어떻게 관계를 맺어 가느냐가 너무나 중요한 것 같다. 참으로 신비한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일상이지만 소소하게 행복을 차곡차곡 채워주는, 그 어떤 것이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저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나와 남편의 뒷모습을 상상해봤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 걱정에 발걸음이 더욱더 빨라지긴 했지만, 남편과의 짧은 동네 탐방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참으로 평화로운 주말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