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사시는 우리 엄마.

생일날에는 엄마에게 미역국을.

by 송앤


아이를 재우면서 잠이 들던 나는 다시 안방 침실로 돌아왔다.

다소곳이 잠이 든 남편 옆에 누웠다.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는데, 불현듯 친정엄마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다시금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엄마의 눈물이 다시 떠올랐다.

엄마의 60여 년의 인생의 어느 부분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다시 리플레이 해보았다.

그럴수록 묵직한 무엇인가가 자꾸만 꾸억꾸억 올라오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 어떻게 그렇게 사셨을까. 나는 눈을 감고 나의 신에게 읊조리듯 말했다.


'하나님... 우리 엄마 불쌍해요.. 왜.. 그때, 도와주지 않으셨나요.'


성스럽지 않은 나의 기도는 같은 말만 되뇔 뿐이었다. 더 이상 어떤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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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자'는 말은 요즘 우리들에게 행복으로 이끄는 좋은 방향을 제시하는 말과 같다.

지나간 과거 따윈 잊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현실에만 충실하는 것.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게, 오늘 하루를 감사하게.


그러나 그것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마음먹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다지만, 그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주어진 현재는 과거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의 현재는 어쩌면 나의 미래를 결정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곪고 썩어서 나를 좀먹고 있다면, 지금의 현재를 충실하게 감사하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우리 엄마는 과거의 상처에 여전히 많이 아파하고 계신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가지고 계시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현재를 살고 계신다. '현재를 살라'는 말의 색깔과는 조금 다른 현재를 사신다.

과거의 상처로 불쑥불쑥 올라오는 통증을 꽁꽁 싸매면서, 앞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계시지만,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현재의 문제가 더 시급하신 것이다. 과거 상처는 대충 망각의 밴드로 붙여놓고, 미래의 두려움을 동력 삼아 그날그날 열심히 일을 하신다. 엄마의 현재는 감사와 즐거움 보다도, 과거와 미래로부터 탈피를 위한 몸부림이시다.


나는 강인하고 성실하게 일만 하신 엄마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보고 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둘째 동생이 독립을 하고, 막내 동생의 뒷바라지가 거의 남지 않게 되었을 때는 우리 부모님의 경제적인 부담과 어려움은 조금은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착오였고,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는 나의 바람이었다. 부모님의 경제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얼마큼의 자산을 가지고 계시는지는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정말 한순간도 쉰 적이 없으셨던 엄마였기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 돈을 모으셨지 않으셨을까...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세상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몸을 갈아가며 일을 하시는 엄마에게 남은 것은 여전히 현재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시다. 도대체 우리 엄마, 어쩌다 이렇게 인생을 살게 되신 걸까.


우리 엄마의 불행의 화살표는 바로 우리 아빠에게 쏟아진다. 아빠의 무능력과 무책임함, 그리고 엄마에게 대하는 무례하고 나쁜 태도들. 일찍이 경제적인 책임은 엄마에게 떨어졌으니, 사실상 가장의 무게와 역할은 엄마에게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옛날 아빠들의 가장의 무게와 그 자존심이라는 것이 쉽게 사라질 리가 없다. 바깥 일과 집안일 둘 다 엄마가 도맡아 하시면서도, 아빠의 무게는 쉽게 덜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간절히 호소를 해도, 아빠는 엄마의 마음을 눈곱만큼도 헤아릴 줄을 모르시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그런 아빠의 태도가 몹시 화가 나고, 마음 아파하신다. 아빠가 이제 그만 좀 정신 차리고 가장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길 바라시는데,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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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월 1일에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지시면서 갈비뼈가 골절되는 사고가 있었다. 그 사고는 우리 엄마에게 정말 큰 시련과 아픔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엄마가 일을 쉬시고, 아빠가 일을 하게 되시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엄마는 30여 년 평생 일을 해오시다가 처음으로 6개월을 쉬신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고 있던 아빠가 직접 일을 찾아서 하게 되어, 우리 엄마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1년도 채 채우지 못하고 직장에서 잘렸고, 엄마가 다시 일을 하시게 되었다. 너무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하시게 되어서, 갑자기 간 수치가 높아져서 일을 그만두게 되고, 그 짧은 순간 엄마는 죽음을 생각하시게 되었다. 약을 먹으면서 꾸준히 관리를 잘하면 되었기에 당장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는 다시 일을 찾아서 하시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빠는 쉬고 계시고,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가 다시 엄마에게 떨어졌기 때문에.


그러다 또 올해 1월 3일. 엄마가 걸레질을 하시다가 허리가 삐끗하셨다. 엄마의 몸이 많이 약해지셨다는 게 느껴졌다. 여전히 우리 엄마는 일터에 가야 하는데 못 가게 되는 것을 걱정하고 계신다. 가족들이 당연히 쉬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 말을 하지만, 우리 엄마는 일 걱정이시다. 쉬라는 말은 엄마에게 무책임한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내가 쉬면 누가 먹여 살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의 비애와 아픔을 누가 알아주며, 알아준들 무엇이 달라질까.

그렇게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세상은, 하나님은, 왜 그런 사람들의 편이 되어 도와주시지 않는 걸까.


나와 내 동생들을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잘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나는 엄마를 보면서 매번 느낀다. 엄마의 희생과 노고가 없었다면, 평범하게 자라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 행복하고 늘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마저도 우리 엄마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로서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의 행복을 위해 살라고 나와 동생들은 말한다. 하지만 엄마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책임감이 덜어지게 되었을 때 가능한 말일 것이다. 부모님의 경제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너무 안타가운 마음이 들지만, 그것도 나의 현생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상상일 뿐이라서,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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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일이다.

30여 년 전 나를 낳았던 20대의 엄마를 생각해본다.

엄마에게 결혼은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가난하고 두려운 원가족으로부터의 도피였다고 했다. 그랬던 엄마에게 나의 존재는 어떤 것이었을까? 행복하셨을까? 여전히 두려운 미래였을까?

나는 내 생일이 되면 우울해지곤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삶이라는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 이면에, 고난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인생을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보고 자라와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깔려있는 배경 같은 것이다.

엄마가 오늘은 일을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병원에 꼭 가셔서 치료받으시고, 당신의 몸과 마음을 더 잘 돌보셨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다.



오늘 엄마에게 꼭 미역국을 끓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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