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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앤 Aug 20. 2021

마음 고백


아이들 등원을 마치고 나면, 외출 준비를 하고, 작업실로 향한다.

조용하고 적막한 작업실에서 온 집중을 다해 작업을 한다. 작업을 마치고 나서도 부족한 결과물 때문에 스트레스이다. 아이들 하원시간에 맞춰서 쫓기듯 작업실을 나오면, 찝찝한 마음을 뒤로 한채, 스트레스를 그대로 짊어지고 집으로 되돌아 간다.      


바쁘게 저녁준비를 하고 있을 때, 더위와 많은 일처리에 몸이 무거워진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쉴 틈도 없이 남편은 아이들을 받아주고, 허기진 배에 밥을 채워 넣고, 다시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마저 하지 해내지 못한 집안일을 한다. 피곤해 보이는 아내 상태를 엿보고, 최대한 아내가 쉴 수 있도록 아이들과 분리시켜 준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아빠를 찾고, 재잘댄다. 아이들을 씻기고, 잠 잘 준비를 시켜야 하는데, 육아의 마지막 일정은 참으로 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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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고되고, 일주일이 고되고, 삶이 고되다고 느껴지면, 자연스레 드는 질문이 있다. 

삶이 무엇일까? 왜 사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질문은 답을 구하기 위한 질문이기보다, 지금 나의 현 상태에 대한 보고와 같은 것이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상기를 해야만 다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거 같은, 지금은 그 목적이 사라진 것 같은 그런 상태. 한마디로 영적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끊임없이 바닥으로 찾아 기어 들어갔다. 그래도 간신히 나를 붙잡고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인지, 어떻게든 좋은 답을 찾아내려고 했다. 내 상태로는 내놓을 수 없는 은혜의 정답이.      


목적 없이 사는 삶은 알맹이가 빠진 껍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맹이가 없는 열매에 껍질이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열매라고 할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매인 것처럼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그것은 껍질일 뿐이다. ‘삶은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그저 살아내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거창할 것이 없고, 그저 순리대로 살다가 가는 것. 그 말에 동의를 했다. 그런데 조금 힘이 빠지는 문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날씨와 같은 상태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여러 모습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날씨라 할지라도 하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해주고 있다. 하늘은 그 자체로 하늘의 몫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삶이 이랬다 저랬다 할지라도, 내가 내 몫을 해내며 살아간다면, 그 자체로 삶은 축복이고 감사한 것이다.      

     

나의 몫,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많은 질문과 많은 대답 중에 가장 나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라는 것.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나는 이 성경말씀을 좋아한다. 나는 이 말씀을 대학생 때부터 마음에 새겼다. 나는 그분의 피조물이구나, 나에게는 나의 창조주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는 구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늘 함께 동행하는 삶, 나의 삶 자체가 하나님과 연결된 삶이다. 내가 먹는 것, 가족과 함께 사랑하며 사는 것,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과 연결이다. 모든 과정 가운데 어려움과 낙심이 찾아온다. 그것마저도 하나님과 함께 보내고, 함께 이겨낸다. 그 가운데 하나님을 알아가고, 나를 알아가고, 누군가를 알아가고, 그렇게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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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가는 것에 몰두를 하다보면, 내 영적인 상태가 바닥을 보이는 때가 온다. 그러면 내가 하던 모든 것에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심지어 삶의 의미조차 의심을 하게 된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가.’ 

  최근 시작하게 된 새로운 일들로 인해서, 나는 부족함 투성이인 나를 자꾸 마주하게 되고, 보게 된다. 좋은 결과물을 위한 집착과 부담으로 인해서 현재 부족한 나를 받아드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가 되었다. 단기간에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은 천재가 아니고서야 가능한 것이 아님에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었다.      

천천히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해내야 하는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해왔고, 늘 부담을 가지며 살아왔다. 그런 나를 보던 주변 사람들도 나에게 늘 같은 말을 해줬다. 잘하고 있으니, 부담을 내려놓으라고. 부족한 그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고. 남들도 나를 그렇게 봐줬는데, 내 자신 스스로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내 결과물에 집착하고, 또 부족한 나를 채찍질 했다. 외부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잘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것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 늘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마음, 그것은 겸손일 수도 있겠지만, 혹은 교만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으로 삶을 자유하게 살고 싶은 이상이 있지만, 현실은 어떻게라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아등바등 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진짜 내가 원하는 모습은 무엇인 것 일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언제까지고 받아들여주실까? 이런 나를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 시켜주실까?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야하니 하나님을 위한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있는 모습 그대로가 정말 괜찮은 것 일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내 삶의 이유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지 못하는 나를 보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으실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살아내게 하시진 않을 것 같고.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히 듣는 시간이 바쁜 삶 속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나의 허망한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자. 하나님을 위한 삶이라고 하는 것 자체도 그저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자. 오늘은 작업실을 가지 않았다. 허망한 나의 욕심과 아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으로 충만해지고 싶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싶다. 내 마음을 드리고 싶다. 내 마음을 깨끗이 보고싶다. 그저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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