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 그는 누구인가?
시지프스의 신화는 간단하다. 욕심 많고 꾀가 많았던 시지프스는 사람들을 속이고 심지어 살해까지 저질렀다. 그러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그를 데리러 오자, 오히려 타나토스를 잡아 족쇄를 채워버리고. 그 결과 한동안 세상에는 아무도 죽지 않게 되고, 결국 전쟁의 신 아레스가 나서서 타나토스와 시지프스를 데리고 갔다
하지만 시지프스는 죽기 전 아내에게 “내가 죽으면 제사를 지내지 말라”라고 부탁해 두었다. 저승에서 제사를 받지 못하자 하데스에게 “아내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며 잠시 이승에 다녀오게 해달라고 청했고, 승낙을 받았다. 그러나 이승으로 돌아온 시지프스는 다시 돌아가기를 거부했고, 결국 헤르메스가 억지로 그를 저승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그는 그 유명한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게 된다.
그 형벌은 이렇다 시지프스는 커다란 돌을 가파른 언덕 정상까지 밀어 올려야만 했고, 돌이 정상에 닿으면 다시 굴러 내려가고. 그는 다시 그 돌을 올리고 또 올려야 했다. 의미 없이 평생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형벌이었다.
우리는 이 시지프스를 불쌍히 여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유치원을 졸업하면 초등학교,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그다음은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취직, 결혼, 출산… 뭔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곧 또 다른 목표가 우리 앞에 생겨난다. 그리고 목표가 없을 때 인간은 우울해진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 달려간다. 마치 시지프스처럼, 돌을 밀어 올리고 또 돌이 굴러내려 가는 걸 알면서도 다시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돌을 올릴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같은 일을 반복해도 우리는 그것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또 질문이 생긴다. 시지프스도 돌을 밀어 올릴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의 삶도 행복할 수 있을까? 분명 우리의 삶과 시지프스의 형벌은 닮았다.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지만, 시지프스는 그저 정신승리를 하고 있을 뿐일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 언젠가 끝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려 한다. 결국 우리도 정신승리를 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아마도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의 삶은 시지프스의 형벌과는 다르다”라고. 왜냐하면 만약 정말로 같다면, 우리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을 테니까. ‘불쌍한 형벌을 받는 자’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이라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의미 없는 삶 속에서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목표를 세우며 정신승리를 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정말 우리는 행복하다고 믿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사실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카뮈의 말처럼, 시지프스는 정말로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