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를 떠나 서울로 향한 영수. 처음에는 그저 몸이 나아지자마자 화려한 도시로 회귀하려는 이기심처럼 보였다. 친구들의 "너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라는 감언이설은 그에게 아주 좋은 핑계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영수는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화려한 삶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스스로를 지옥 불에 밀어 넣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영수는 왜 그토록 원하던 서울에서 행복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영수는 첫눈처럼 맑은 은희 곁에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참한 자각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은희의 순수한 사랑은 안식처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과분한 무게'였다. 결국 그는 서울로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오물을 은희라는 맑은 샘물에서 분리해 시궁창 속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내가 옆에 있으면 은희가 불행해질 거야"라는 비겁한 합리화는 그가 도망치기 위해 준비한 마지막 위안이었다.
세월이 흘러 은희의 부고를 듣고 병원을 찾은 영수는 차갑게 식어버린 은희 앞에서 오열한다. 본인이 떠나놓고 이제 와서 왜? 하지만 그 눈물의 실체는 순수한 애도가 아니다. 그것은 "나 같은 놈이랑 계속 살았으면 은희는 진작에 화병으로 죽었을 거야"라고 끝까지 자신을 방어하려는 추악한 배려와 자기 합리화의 산물이다. 그래야만 은희의 죽음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겨우 지탱할 수 있었을 테니까.
은희가 간절히 부탁했던 "죽을 때 곁에 있어 달라"는 약속은 지켜졌지만, 그것은 지켜진 것이 아니다. "내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더 오래 살았을까"라는 지옥 같은 가정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영수가 흘리는 눈물은 은희를 향한 그리움이기보다, 눈앞에 온 행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제 발로 걷어차 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지독한 비련이다.
은희가 죽고 나서야 영수는 깨닫는다. 자신이 받았던 사랑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잔인한 진실을. 영화의 끝에서 보여주는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 은희'와 '살아있는 지옥을 견뎌야 하는 영수'의 대비는 가슴에 시린 자국을 남긴다.
결국 이 영화에서 말하는 '행복'은 단순한 감정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무게를 견딜 용기가 없는 자에게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 되는 '시험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