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판다 영웅의 하소연>

: 가짜 엄지의 영혼 지키기

by 송바오

나는 판다에게 있는 엄지예요. 판다는 곰이고요. 곰들에게는 내가 없어요. 하지만 판다에게는 내가 있지요. 아니, 최근에 들었는데 내가 가짜인 거래요. 정확히 설명하자면 앞발에 다섯 개의 발가락 외에 엄지 역할을 하는 짧고 뭉툭하며 발톱이 없는 가짜가 하나 더 있어요. 그게 저예요. 육식하던 곰이 초식하기로 선택하면서 대나무를 편하게 때로는 능수능란하게 다루기 위해 종자골의 뼈가 자라났어요. 그게 나라고요. 내가 나머지 모든 발가락과 마주 보면서 영장류의 손처럼 물건을 움켜잡을 수 있게 된 거예요. 물론 조금 미숙하긴 해요. 하지만 가짜라고 불리는 나는, 나머지 다섯 개의 발가락들이 대나무를 단단히 움켜쥘 수 있도록 묵직한 힘을 보태고, 모두를 부족함 없이 하나하나 마주하면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섬세한 도움과 관리를 더 해 줘요. 어찌 보면 온전치 못한 나여서 평범했을 나머지 다섯 발가락에 더 눈이 가게 해주기도 하고, 비록 온전치 못한 나지만 엄지로써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온전한 나머지 다섯 손가락보다도 더욱 영웅적인 존재로 비추어지죠. 그런 나이기에 가혹한 야생에서 판다의 신체가 건강하게 가동되고 생존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기관이라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이런 나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가짜라니요. 조금 서운하네요. 이렇게 엄지로써 모자람이 없는 나를 단지 외관상 부족함이 있다 하여, 혹은 일반적인 개수 이외의 것이라 하여 계속 나를 가짜라고 강요할 건가요? 가끔 나에게 그런 표현은 굉장히 공포스러운 폭력으로 다가와, 어렵게 자라 나오다가도 깊은 자괴감에 다시 퇴화 과정을 겪게 할 만큼의 심리적 지배예요. 그리고 서로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고요. 때로는 내가 귀가 없는 게 다행이라고 느껴져요. 그 표현이 악의가 있건 없건 간에 나는 충분히 진짜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나는 수백만 년 전부터 엄지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나는 나를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약해지지 않고 계속 나의 영혼을 지키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거예요.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는 나처럼 영혼을 지키며 스스로를 믿고, 묵묵히 나아가는 그런 지혜가 필요해요. 행여나 수백만 년이 걸릴지라도 말이에요. 세상의 모든 빌런들에게는 펀.치!를, 세상의 나와 같은 모든 영웅들에게는 엄.지.를 척!



우리의 히어로 : 가짜 엄지, 진짜 영웅(feat.宋bao.)


https://m.cafe.naver.com/zootopiamembership/22881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난 충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