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퇴사 버튼

회사대신 놀이터로 출근합니다.

by 베니

"근무연수 14년 2개월, 정년 잔여기간 22년 9개월, 본인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특별 명예퇴직을 신청합니다."


몇 년 동안의 고민은 단 몇 번의 클릭으로 끝이 났다. 퇴사를 신청하는 체크박스를 선택 후, 결재라인을 지정하고 올리면 되었다. 이 단순한 과정은 그동안 고민을 많이 했을 테니, 퇴사라도 쉽게 하라는 회사 차원의 마지막 배려인 거였나. 마치 시간 외 근무 결재를 올리는 것과 크게 다른 절차도 아니었다.


퇴사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나서 바로 그만둔 건 아니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가족들과 특히 우리 딸 그 회사 다닌다고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첫 번째는 고충처리를 통한 기관 이동을 했고, 두 번째는 휴직을 선택했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 퇴사를 결정한 것이니, 내 마음이 요동치던 시간에 비해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자'가 아닌, '잘 버텨보자'. 워킹맘으로 지내던 어느 날 지인과의 통화 중에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어" 그 말은 오랫동안 남아 나를 아프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될 줄 알았다. 일도 아이도 가정도. 때로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 일들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내 손으로 애정 들여 키우고 싶은 마음에 오히려 아이가 커갈수록 더 초조해지기만 했다. 그렇게 진짜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후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워킹맘 시절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이제 그만 벗어나라고 얘기한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절, 첫 이삿날 연차가 없어서 신혼집과 작별 인사도 못했던 일, 일하는 도중 다쳐서 대여섯 바늘을 꿰매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밀린 일을 하던 날. 그때는 상처 같던 일들이 이제는 무뎌지고 희미해져 간다.


가끔씩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의 꿈을 꾼다. 신기한 건 상황은 다 다르지만 햇빛이 잘 드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내 모습과 "안녕히 계세요. 저 퇴사합니다."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마지막 근무를 하고 인사하는 장면으로 비슷하게 끝난다. 꿈속에서 내 모습은 더없이 밝고 빛났다.


최근에 내가 회사에 가지고 있는 생각은 무얼까 생각해 봤다. 아마도 그건 그리움이 아닐까?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이 아닌, 그 반짝이던 시절과 최선을 다했던 그때의 나에 대한 그리움. 회사에 다니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이사도 했으니, 그 모든 시간은 직장인으로서의 시간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상처로 얼룩져있지만은 않았던 나의 회사 생활. 이제는 남편 말대로 마음속에서 놓아주어야겠다. 퇴사 후 나는 핸드백 대신 간식꾸러미가 든 에코백을 들고, 출근하듯 놀이터로 향한다. 그렇게 놀이터로 출근하기 로망은 지난 3년간 진짜 현실이 되어, 마음속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