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존경을 담아
첫 번째 지점장님은 내가 막 입사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 만났던 분인데 정년퇴직을 앞두고 계셨다. 그 연세에도 에너지가 넘쳐 보이셔서 신기했다.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시며 좋은 식당에 식사 자리를 마련하시고는 잘 키워서 우리 회사에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셨다. 언젠가 들은 소식으로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하신다고 했다.
두 번째 지점장님은 본사 부장님으로 계시다가 내가 있는 지방 지점장님으로 내려오신 분이다. 딸은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전국 관리자 회의에 참석하시고 며칠 후 전화를 한통 받으셨다. 더 먼 지방의 평사원으로 내려갈지 그만둘지를 결정하라는 전화였던 것 같다.
지점장님은 회사를 그만두시는 걸로 결정하셨다. 여전히 아무것도 잘 모를 때인 나는 회식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 소문은 아마 전국구로 퍼져나간 것 같다. 회사를 나가시고 2년 후쯤 예전 사진을 보다가 생각나서 연락한다며 사진 한 장을 보내오셨다. 부동산을 하고 계신다고, 잘 지내신다고 하셨다.
세 번째 지점장님은 정년퇴직을 2년 정도 앞두셨었는데 지금 있는 지점에서 정년까지 마치길 바라셨다. 하지만 1년을 남기고 특별 정년퇴직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내규가 생겨 급하게 회사 생활을 마무리를 하셨다. 다른 직원들은 어려워하는 분이었는데, 유독 나한테는 정말 잘해주셨다.
언젠가 점심시간에 말씀하진 적이 있는데, 매일 소주 1병을 저녁식사 때 드신다고 했다. 한번은 지점에 서양란하고 커피잔 세트가 선물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예쁘다고 한마디 했더니 모두 가져가라고 하셨다. 난은 금방 시들어버렸지만 그때 받은 커피잔은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네 번째 팀장님은 지점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때 만났던 분인데 관리자임에도 그냥 친한 선배 같았다. 할 말도 서슴없이 하고 회사 생활하면서 12시가 넘어 퇴근하는 날이 있어도 그냥 즐거웠다. 1년 반 동안 근무하며 있는 에너지 없는 에너지 다 끌어 쓴 시기였는데 그때는 업무가 특수하기도 해서 회사가 아니라 다시 대학교에 다니는 기분이었다.
내가 결혼을 하게 되자 팀원 부족임에도 서울로 가야 한다며 흔쾌히 보내주셨다. 결원인 상태로 팀이 지속되다가 다른 부서 부장님으로 가셨고, 2년을 다니시다가 명예퇴직을 하셨다. 지금은 전업투자자로 활동하신다.
다섯 번째 지사장님은 모든 직원들이 두려워하는 호랑이 같은 분이셨는데,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도 강하고 최약자에는 가장 따뜻했다. 나는 그걸 알았기에 무섭거나 어렵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때, 지사장님께 면담 신청을 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하니, 내일부터 당장 연차 쓰고 쉬다가 다음 주에 휴직 공문이 내려올 거니 휴직 신청으로 하라고 해주셨다. 1년 뒤 복직할 즘이 되어서 내 이름을 검색해 보니 보이지 않아서 전화를 주셨다고 했다.
나의 휴직이 시작된 즈음 서울에서 광주로 발령이 나셨는데, 내가 있었을 때였다면 퇴직 처리 안 했을 텐데 왜 나한테 말도 없이 나갔냐고 역정을 내셨다. 퇴직하면 서울 지리를 다 꿰고 있으니 택시 운전을 하시고 싶다고 하셨는데 비교적 최근 일이라 전화를 못 드렸다.
어제 카톡 방에서 음악 하나를 받았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ost였다. 첫 1~2화와 맨 마지막 장면만 봤는데, 중간에는 밀려오는 현실감 때문에 보지 못했다. 어제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가 가사를 보게 되었고 나의 김부장님들이 생각났다.
눈 뜨고 둘러보니
난 이미 혼자였다
그리 오래 좇아온 것들
먼지처럼 부서지고
내가 알던 말들과
굳게 믿은 약속이
더는 아무 의미 없다고
서슴없이 버려지면
넌 어떡하겠니
난 어쩌면 좋겠니
세상이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넌 어떨 것 같니
난 이제 어떡해야만 하니
눈 뜨고 둘러보니
난 이미 혼자였다
이적 「혼자였다」
한 번쯤은 화가 난 적도 있었다. 잘해주셔서, 쓸데없이 회사에서 너무 열심히 한 것 같다고 그래서 번아웃이 온거 아니냐며 따지고 싶기도 했다. 그냥 적당한 노선을 취할 걸 탓하고 싶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각한다.
그때는 그게 모두의 최선이었다.
지사장님, 지점장님, 부장님 그리고 우리 모두의 김부장님들께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건강하시고 또 행복하시길.
https://youtu.be/MXz88usIhzA?si=tcmU51zlduGpoDy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