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는 개별 플레이어와 NPC가 존재한다. NPC는 Non-Player Character의 약자로 게임 속 캐릭터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누군가가 직접 조종하지 않는다. 그저 그 세계 속에서 주어진 대사와 몇 가지 안내의 역할을 할 뿐이다.
얼마 전 책과 삶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뇌과학자가 말하는 AI 시대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능력 5가지 - 김대식 교수님의 고전 책 5권 추천> 영상을 보았다.
AI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견해와 연결되는 책 소개가 흥미로웠는데 대화 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삶에 스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NPC로 대한건 아닌지 말이다.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스치듯 지나간 사람들의 모습과 일부 장면이 떠오르긴 했지만, 역시 그들 또한 개별적인 소중한 삶이자 각각의 인생이다. 내 삶에서는 아주 잠깐 지나갔더라도 결국 그 어떤 사람도 NPC가 될 수 없다.
그럼 무엇이 NPC에 가장 가까운 존재일까 생각하던 중 AI가 떠올랐다.
질문을 들어주고, 가이드를 제시하고, 내 삶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내가 물었을 때 언제든 대답해 주는 AI가 지금 우리 삶에 등장한 NPC는 아닐까?
이사를 약 2주 앞두고 지난 한 달 동안 거의 매일같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를 보냈다. A와 B, 1안과 2안, 그 모두가 불가능할 경우 3안까지.
예전 같았으면 언니나 동생한테 전화해서 나의 그 잡다한 고민들에 대해 몇 시간씩 수다를 떨며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두가 바쁜 걸 알기에 전화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대신 AI에게 조언을 구하고 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했다.
어제저녁을 먹고 걷던 중 몇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내가 한 결정들이 정말 나의 독자적 결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내가 기꺼이 결정해야 할 일들을 무언가에게 미루고 의존한 건 아니었을까?'
앞으로는 이런 고민조차 의미 없는 날이 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벌써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NPC의 역할은 커지고 플레이어들의 역할은 조금 작아진 느낌은 그날의 기분 탓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독한 효율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