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걷고 주저 않은 시간 동안 얻은 것

행복을 찾아서

by 베니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다 보면 언젠가 걷게 될 날이 올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걷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어느 날은 누가 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전달해 준 적이 있다.


"저런 애는 쉬지도 못해"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화가 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했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었으니까. 휴게실에도 가지 않고 화장실 칸에 조금 앉아있다가 나오는 게 다였으니까. 인사발령으로 미리 인사를 간 날도 차마 그냥 집에 오지 못하고 문서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고 온 적도 있었다.


일을 성실히 하면 할수록 쌓였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힘듦과 지쳤던 마음을 얘기하지 못했다. 여직원 그리고 아이 엄마라는 타이틀이 나를 더 옭아맸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지쳐도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던 어느 날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뛰고 있는 거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뭐지? 이 길 끝에 결승점이 정말로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다 보니 결승점 같은 건 내가 만들어낸 허구라는 생각이 스치듯 들었다. 그리고 이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처음으로 내 행복은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한번 들자 그토록 열심히였던 일에도 회의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행복한가, 어차피 길 위에서 끝나는 게 인생이라면 그저 조금 멀리 간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고속도로 같은 길을 달리다 주변 경치도 다 놓치고 가는 인생보다 차라리 오솔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길가에 핀 꽃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가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러 사건들, 지친 마음,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퇴사를 결정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좋았다. 햇살 좋은 날 학교 앞 벤치에 앉아 하교를 하는 아이를 기다리며 책을 읽기도 하고, 완연한 봄이 오기 전 꽃 시장에 들러 집에 미리 봄을 가져다 두기도 했다.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에는 투명 우산을 쓰고 아이와 한참을 걷기도 하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동네 풍경들을 보며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아이가 조금씩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자 나는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네 행복을 찾았어?'


아이와 놀이터에 놀던 3년, 느리게 흘러가던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 행복을 찾아냈다. 그 행복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솔직해지자 알게 된 것이다.


뛰는 게 싫지 않았다는 것, 너무 오랫동안 뛰기만 해서 지친 거였지 열심히 뛰는 시간 자체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도 사랑한다. 아이와 놀이하는 시간, 계절과 자연을 관찰하는 시간,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귀 기울이는 시간, 책을 읽으며 질문하는 시간, 모두 내가 사랑하는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어떤 인생이 좋고 나쁨이 아닌 그저 본인 인생의 한 그래프 위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힘든 시간들도 지나고 나면 봐줄 만한 하루였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시기를 지나 잠깐 숨 고르기를 한 뒤에는 또다시 나아갈 힘을 얻어 뛰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는 걸.


달리던 시절과 완만한 그래프 같은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승점이 없더라도 나는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따라 쓰고, 글을 쓰는 인생, 글쓰기를 배워본 적도 없는 내가 내 마음에 솔직해지자 찾아낸 나의 행복이다.


때로는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주저앉아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 어떤 시간도 괜찮다. 각각의 시간 동안 얻는 게 분명히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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