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가시들이 사라지면

누군가를 맨몸으로 안아줄 수 있다는 행복

by 베니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부터 내 마음 가장 안쪽에 보이지 않게 작은 가시를 숨겨두었다. 가까이 다가오면 나를 방어하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가시였다. 가시를 숨기고 있으면 적당한 친절과 다정함 속에서도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눈에 띄지 않았지만 조용히 나를 보호할 수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매일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서 놀이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있는 날들이 많았다. 아이가 다치지 않게 시선만 잘 따라가면 되었으므로 그곳에서 나는 날을 세우지도 않고 긴장이 풀린 채 있곤 했다.


혼자 멀뚱히 앉아있는데 아이들의 놀이가 갑자기 시작되면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묻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통상 회사에서는 소속과 업무를 밝히며 긴장 속에서 관계가 시작되지만, 놀이터에서 시작된 관계는 내가 누구인지 보다 그냥 그 상황 자체에 있는 인물로서 관계가 시작된다.


1학년 엄마인지 묻는 질문, 어디 유치원 나왔는지 물어보는 말들, 아이가 에너지가 넘친다는 칭찬, 갑자기 들어온 말들은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긴장 없이 가볍게 시작되는 관계도 괜찮았다.


어느 날은 학교 앞에서 새로 사귄 친구엄마와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보온병에 따뜻한 물과 커피믹스를 가져와 추운데 커피를 마시라며 건네주시는 또래 아이 할머니도 계셨다.


학교 앞 놀이터는 자신의 아이가 몇 명과 놀지 미리 예상이 안 되는 곳이기 때문에 간식을 넉넉히 챙겨 오는 엄마들이 잘 모르는 우리도 챙겨주어서 놀이터 간식문화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커피믹스 한잔과 작은 과자 몇 봉지, 음료수 하나, 젤리 등 무방비상태에서의 친절과 호의를 받은 나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기에 이게 무슨 마음인지 잘 몰랐고, 작은 것들이 나에게 이렇게 크고 소중하게 다가올 줄 몰랐다.


그 이후에도 놀이터에서 많은 엄마들과 사귈 수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제철 감자와 복숭아, 외국 과자 등을 나눠주었고 나도 옥수수, 과일 등을 답례로 주곤 했다.


회사에서도 분명 비슷한 호의를 받은 적이 있었을 텐데, 한 겹 유리막으로 가려져있었기에 나는 그 호의와 친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한 번쯤은 호의의 의도를 계산한 적도 있고, 있는 그대로가 아닌 늘 절반 정도만 나에게 와닿았다.


하지만 놀이터에서는 조금 달랐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글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어떤 방어막도 없는 상태로 있었고 예상치 못한 시점에 갑자기 들어온 친절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느끼게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이제 가시가 필요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가시는 내 안에서 제 역할을 다 했기에 자연스럽게 사라진 거라고 생각한다. 가시가 사라지고 맨몸으로 있으면 아마도 가끔씩은 따가운 상처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내가 받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언제든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살아 있는 감정과 감각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일. 어쩌면 그건 나 또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간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시가 사라졌으니 나도 이제 맨몸으로 누군가를 마음 편히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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