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어딘가 어긋난 시간을 사는 일

퇴사 후의 진짜 마음

by 베니

오래된 소망이 현실이 되었다. 꿈꿨고 계획했던 퇴사였어도 갑작스럽게 넘쳐나는 시간은 생각보다 당황스러웠다. 어릴 적 본 어떤 책에서는 겨울잠에 든 개구리 이야기가 나온다. 개구리는 봄이 되었을 때 잠에서 깨야하지만, 봄이 오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버린 개구리는 자신이 살던 공간이었음에도 겨울이라는 시간 속에 당황한다.


평일의 낮 시간은 느닷없이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와 마찬가지로 내가 있어야 할 시간과 공간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40년 가까이 9 to 6의 표준인생을 살았으니 아무리 퇴사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수십 번 돌렸다 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현실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아이 등하교를 제외한 3시간 남짓한 시간은 연차를 내고 쉬는 달콤한 자유시간과는 분명히 달랐다.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역할이 바뀌었고 회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문서를 만들던 나의 쓸모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그다지 쓸모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뭘 해야 하지? 눈에 보이는 가장 좋은 실적은 청소였기에 집안에서 낼 수 있는 실적과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몰두했던 기억이 난다.


퇴사는 분명 용기가 필요했다. 생계가 달린 일이고 삶이 달라질 일이다. 나를 보호하던 울타리는 사라졌고, 나에게는 어떤 명함도 소속도 없이 내 몸과 이름만이 남았다.


상실감은 현실이 되고서야 온전히 느껴진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노력과 경험이 내 인생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분을 느끼고 완전히 과거형으로 표현될 때 별안간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 아니었던가. 그때의 나는 어딘가 어긋난 것 같은 주부의 시간과 주부의 역할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고, 조직 속에서 이름이 사라진 나를 온전한 나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자발적 경력단절자의 삶은 간절했던 것에 비해 생각보다 달콤하게 시작하지 않았지만, 오묘하게 뒤틀어진 것 같은 시간과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며 서서히 적응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