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귓속에는 매미가 살아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하나로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을까? 아마 그 마음은 절반도 안되었을 수도 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진짜 계기는 아이보다는 나의 문제였다.
회사를 막 입사해서 제대로 된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이 찾아왔다. 귀가 먹먹하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어 곧바로 양쪽 귀에 이어폰을 껴봤다. 오른쪽에서 들리는 음악소리가 왼쪽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어폰이 고장 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반대로도 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갑자기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고, 나는 스물여섯 살에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했지만, 청력은 절반 정도밖에 회복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높은 음역대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알람소리, 경보음 같은 소리는 잘 듣지 못하고 그때부터 이명이 시작되었다.
이십 대 젊은 나이에 청력을 잃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공개하기보다 단절을 택했다. 듣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일부러 일에 집중하며 듣지 않았다.
조용한 공간에서의 대화는 크게 문제없었지만, 주변에 소음이 있거나 귓속말로 작게 말하면 거의 듣지 못했다. 사람들 말소리를 놓치는 게 싫어서 입을 쳐다보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입모양을 보면 잘 못 들었더라도 어느 정도 유추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기간 마스크를 쓰면서 소리가 마스크에 막히고 입모양도 볼 수 없어졌다.
회사 생활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바로 그때였던 것 같다. 아이를 다른 사람들 손에 맡기면서 오는 힘듬도 있었지만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같이 풀 사람이 없었다. 활발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은 점점 움츠러들었고 사람들과의 대화도 두려워졌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다니는 회사였는데 돌아보니 행복보다는 슬픔으로 가득 차 었었다. 내손으로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는 슬픔과 내 오래된 아픔은 점점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만둔다고 말하려고 면담을 신청해 놓고 또 말하지 못해서 집 가까운 곳으로 발령 신청을 했다. 1년 더 다니다가 회사의 큰 프로젝트로 인해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평소보다 크게 삐- 울리는 TV화면 조정소리와 매미가 우는 것 같은 이명소리를 며칠 내내 듣고 있으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퇴근 후 나는 울면서 "싸구려 이어폰으로 소리를 듣는 느낌이야."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나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회사 그만둔다고 말해."
오래된 고민은 나의 오랜 슬픔에 의해 끝을 맺었다. 이제 내가 갈 곳은 회사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갈 놀이터라고 생각하면서 회사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 병을 앓은 지 15년이 되었고 나는 이제 내 슬픔과 함께 산다. 아니 살아가기로 했다. "죄송한데요. 제가 잘 못 들어서요. 크게 말씀해 주시겠어요?"그 말을 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