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라는 세계

놀이터는 아이를 위한 시간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by 베니

워킹맘에게 놀이터는 심리적 거리가 느껴지는 낯선 곳이었다. 이미 삼삼오오 무리 지어 놀고 있는 아이들과 갑자기 나타난 낯선 아이가 그 무리 속에 끼어 놀고 싶어 할 때, 미묘한 기류가 느껴지기라도 하면 놀이터는 가깝지만 아주 먼 곳이 되기도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우리도 본격적으로 놀이터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입학했기 때문에 처음 몇 개월은 12시 30분이면 하교를 했다. 점심시간쯤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두세 시간은 놀고 오겠다는 각오를 하고 집을 나섰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이 없어서 한 시간도 안되어 집으로 돌아온 적도 많다.


우리는 함께 놀 아이들을 찾아서 놀이터 유목민처럼 돌아다녔다. 하교할 때 우르르 쏟아져 나왔던 어린이들이 20-30분 정도 있다가 대부분 다음 코스인 각자의 학원을 간다는 걸 그때의 우리는 몰랐다. 도대체 이렇게 많던 아이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의아해하면서 학교와 집 근처 놀이터 몇 군데를 순회하면서 다녔다.


몇 개월의 관찰 끝에 하교 후 30분에서 1시간까지는 학교 근처 공원에 그나마 아이들이 조금 있다는 것과 (그것도 요일별로 다르긴 하지만) 오후 5시경에는 아파트단지 놀이터에 학원이 끝난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가기 전 논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또래들의 놀이터 피크시간에 맞춰 시간을 세팅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에 가는 시간 집에서 보드게임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계속 집에 있을 수는 없었기에 우리 집 어린이도 태권도 학원을 가게 되었다. 태권도 학원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는 놀이터로 직행했는데, 도복은 아이의 놀이터 정복 차림이자 유니폼이 되었다.


5시부터 신나게 놀고 집에 들어오면 7시, 해가 긴 여름에는 7시 40분까지도 놀았다. 가끔은 둘이 씩씩거리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이미 퇴근해서 집에 온 남편은 너네 왜 싸웠냐며 묻곤 했다.


30살이나 나이차가 나는 어린이와 싸운다는 표현은 조금 웃기지만, 미안해서 혼자 감정을 삭이던 엄마가 아닌 화나면 화내고 소리도 지르면서 나의 진짜 감정들을 아이에게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좋은 것만을 보여주려던 엄마 말고 진짜 내 모습 그대로를 찾았고, 이제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면 회사 다닐 때 오후 7시쯤엔 녹초가 됐었는데, 회사를 나가지 않아도 그 시간엔 녹초가 된다는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는 것. 어린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당해낼 어른은 없으니까 말이다.


실컷 놀고 꾀제제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핸드백을 들고 구두를 신고 퇴근하던 예전의 내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편안해진 발만큼 마음도 함께 편안해졌다.


어쩌면 내가 그때 아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놀이터에서 보낸 건 아이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았기 때문일 거다. 11살 이전의 기억은 대부분 사라지기에 아이에게는 언젠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추억이 될 테지만, 어른인 나는 기억할 수 있으니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랫동안 자리 잡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너와의 부족했던 추억을 하나 둘 쌓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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