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와 몸의 흉터 중 더 아픈 것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마음속에 각자의 상처를 가진채 살아간다. 회사를 그만둔 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그곳에서의 일들도 희미해지고 흐릿해졌다.
때로는 악당처럼 보이기도 했던 그들은 멀리서 보니 그저 누군가의 가장이었고, 반대로 생각하면 나 또한 어느 시점에서는 악역이 되어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의 상처는 새로운 기억들로 덮어지면서 언젠가는 그저 추억으로 아물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의 흉터는 마음의 상처보다 훨씬 더 오래간다. 아니, 사라지지 않은 채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몸에 새겨지기도 한다.
회사에서 일하던 중 다친 적이 있다. 업체에 발주한 광고물이 들어와 광고 담당이었던 나는 아침 회의를 하던 도중 검수를 위해 창고로 내려갔다. 무거운 광고판이 들어와 손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회의하는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아서 업체 직원분과 함께 물건들을 옮겼다.
다 마치고 나오는 순간, 누군가가 재사용하려고 놓아두었던 광고판의 날카로운 부분에 발목이 베였다. 피도 안 나고 아프지도 않아서 그냥 사무실에 올라왔는데 자세히 보니 깊게 벌어져 있었다.
회의가 여전히 끝나지 않아 일단 회의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상처를 본 동료직원이 빨리 병원을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해서 혼자 병원을 돌아다녔다.
첫 번째 병원에서는 피부과에 가보라고 했고, 두 번째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서 바로 봉합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세 번째 병원을 찾았고, 다행히 약간의 대기 후 바로 수술할 수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하나도 안 아프셨죠? 피도 안 났고요? 너무 깊게 찢어지면 아프지도 않고 피도 안 납니다."
회의하다 말고 나와서 비를 맞으며 병원을 세 군데 돌며 수술을 했고, 다시 돌아와서는 수술하느라 못한 밀린 일까지 해야 했다.
모든 게 희미해졌는데 그날의 기억만큼은 흉터에서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되살아난다. 언젠가 류시화 시인이 엮은 <마음 챙김의 시>에서 '흉터'라는 제목의 시를 봤다.
흉터가 되라.
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네이아라 와히드
마음은 잊었는데, 몸은 여전히 기억한다. 내 것이 되어 그대로 새겨진 몸의 흉터는 컨디션이 나빠지거나 술이 한잔 들어가기라도 하면 따끔거리고 빨개지며 잊고 있던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놓는다.
살아낸 흔적일까. 회사에 다녔다는 증거로서 남긴 걸까. 지렁이 같이 툭 불거져 나온 흉터는 잘 보이는 발목에 새겨져 있어 치마를 입거나 샌들을 신는 여름에는 가릴 수도 없다.
흐릿해진 마음의 상처와 선명한 몸의 흉터, 마음은 이제 거의 다 아물었으니 몸의 흉터만 잊어버리면 된다.
하지만 흉터는 없앨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으니, 그저 내가 살아낸 시간을 잊지 말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