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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Nov 06. 2016

다큐 '할머니의 먼 집' & 영화 '죽여주는 여자'

백세 시대... 우리가 만수무강을 외칠 수 없는 이유.

주말에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봅니다. 매주 똑같은 포맷으로 두 영화를 소개합니다. 철 지난 영화와 최근 영화를 묶어 소개합니다. 뻔한 포맷에 깊이 있는 리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모바일 인터넷의 등장과 SNS로 사람들은 이제 긴 리뷰를 읽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두 편의 비슷한 소재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합니다.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에라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비슷한 영화 두 편을 깊이 있게 보는 시간이 되고 싶습니다.


*'할머니의 먼 집'과 '죽여주는 여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아무르'를 봤을 때의 그 충격을 기억합니다. 노년의 부부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결말을 맞이하는데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습니다. 강풀 만화 원작인 작품 '그대를 사랑합니다' 역시 치매에 걸린 아내를 바라볼 수만 없던 남편 역시 극단적인 선택을 하죠.


흔히 노년의 어르신들에게 젊은이들이 하는 덕담 아닌 덕담 중에 '만수무강하세요!'란 말을 합니다. 근데 그게 과연 덕담(?)이 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큐멘터리 '할머니의 먼 집'(영문원제 Dear Grandma)의 감독이자 할머니의 손녀인 이소현 감독은 할머니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할머니와 외삼촌이 살고 계신 집으로 향합니다. 아흔이 넘는 나이에 세상살이가 부질없음을 느낀 할머니의 다소 극단적인 선택이었죠. 손녀는 할머니의 일상을 기록함과 동시에 할머니를 지키기로 마음먹습니다. 할머니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지만, 여전히 불안한 불씨는 남아 있었죠.



그러나 합병증이 있던 외삼촌이 낙상사고로 세상을 뜨면서 홀로 있는 할머니의 외로움은 더해 갑니다. 치매 증상도 보이고 기력은 많이 약해졌지요. 가족들은 슬슬 할머니를 모실 무덤 자리를 알아보고 기력이 약해지면서 할머니(혹은 어머니)를 요양소로 보낼지, 아니면 계속 가족들이 항시 집을 방문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생명 연장을 위한 포도당 주사를 계속 투여할지도 손녀와 그녀의 어머니 간에도 의견 충돌이 생깁니다. 다행스럽게도(?) 영화 마지막까지 할머니는 생존해 계신 상태에서 다큐는 마무리합니다.






한편 '정사', '스캔들'로 알려진 이재용 감독의 신작인 '죽여주는 여자'(영문원제 The Bacchus Lady)에는 탑골공원에서 박카스를 건네며 매춘을 하는 노년의 소영이란 여성이 등장합니다. 얼떨결에 코피노(필리핀+한국 혼혈인) 아이를 맡게 되고 그녀가 사는 집은 시끌벅적하지만 활기찬 일상이 계속됩니다.



그러던 와중 그녀에게 많은 노인이 찾아와 자신들을 죽여달라고 요청합니다. 독약, 낙상사고 위장, 수면제 등등으로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인 소영의 마음이 당연히 좋을 리가 없지요.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독한 삶을 마감합니다. 의외의 장소에서 말이죠.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만수무강하세요!'는 좋은 덕담이 될 수 없음을 두 영화는 얘기합니다. 그나마 '할머니의 먼 집'은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가 있지만 '죽여주는 여자'의 소영을 비롯한 노인들은 의지할 곳이 아무 곳도 없습니다. 소영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코피노 소년과 트렌스젠더 집주인, 다리를 못쓰는 총각 등 자신과 어쩌면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과 서로 의지하며 활기찬 하루를 살 수 있었는데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일 뿐 결국 그녀 역시 외로운 여자임을 보여줍니다.


수면제를 먹으며 차라리 오래 사는 것보다 죽은 게 낫다는 할머니나 아무도 위로해 줄 수 없는 곳에서 사는 것보다 삼시 세끼 잘 나오는 철창행이 더 낫다는 소영의 이야기는 어딘가 씁쓸하게 만듭니다.


자…. 이래도 '만수무강하세요!'란 말을 우리가 쉽게 내뱉을 수 있을까요?



*앞에 소개한 '할머니의 먼 집'의 주인공인 이삼순 할머니는 2017년 3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늦게나마 어르신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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