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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Dec 01. 2015

0. 프롤로그

나홀로 전국일주? 왜 나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는가?

멋진 모험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이젠 새로운 당신의 모험을 떠나봐요!
사랑해요.

(애니메이션 '업' /2009 중에서)




극장이 또 하나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극장들의 폐관 소식들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일반 극장도 아닌 바로 독립/다양성 전용관의 폐관 소식입니다.


그 많은, 사라져간 극장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동숭시네마텍, 씨네코아, 코아 아트홀, 씨네콰논, 중앙시네마, 클래식 시네마 오즈, 하이퍼텍 나다, 드림시네마... 다행스럽게도 독립영화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디 스페이스, 서울 아트시네마는 서울극장으로 둥지를 옮겨 문을 열었고 잠시 긴 휴관을 했던 미로 스페이스도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독립/다양성 영화계는 힘들기만 합니다. 건물주들은 계속 높은 가격을 부르고 있고, 영등위는 무조건 가위질 하느리라 바쁘며 영진위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영화만 상영하려는 비정상적인 정책을 발표합니다. 지원이 끊기는 순간 이들 극장과 영화제, 영화계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런 정책에 굴복하고 문을 닫은 극장도 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곳도 있으며 정부 지원금 없이 노동조합이나 후원회원 같은 자생력으로 버티는 곳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그러던 와중에 독립/다양성 전용관을 대표하던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1월 30일... 2015년을 한 달 남기기 직전의 어느 날...

서태지의 노래 제목에 있던 바로 그곳 소격동입니다. 씨네코드 선재.

영화사 진진이 운영하는 이곳은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 전용관 1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시초는 1995년 11월 문을 연 동숭시네마텍입니다. 그리고 몇 년 후 또 하나의 극장이 생기는데 바로 2000년 8월에 문을 연 하이퍼텍 나다입니다. 하이퍼텍 나다는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드물게 공격적인 마케팅과 광고로 많은 마니아들을 대학로로 불러 모으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트는 것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판단에 나다는 문을 닫게 되고 새로운 자리를 물색하게 되었으니 바로 소격동의 아트선재센터입니다. 과거 서울 아트시네마가 위치했던 자리라 영화를 트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던 장소였죠.


아직 상영할 영화도 많고 기획전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씨네코드 선재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습니다.

임대차 계약 종료에 따른 연장 협상에 실패해 11월 30일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었죠.

나다가 운영되던 시절부터 매해 연말에 개최했던 '마지막 프러포즈' 행사도 불투명해졌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마지막 날 세 편의 영화를 상영할 시간을 남겨두었습니다. 이 날 마지막 상영작은 저녁 7시 40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마스터'. 현장 예매 마감시간이 지났음에도 영화를 보려는 줄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정적이 흐르고 영화관 입구에 한 남자가 꽃다발을 들고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씨네코드 선재에서 영화를 틀던 영사기사 김재원 씨.

동숭홀에 1994년에 입사해서 20년을 동숭시네마텍-하이퍼텍 나다-씨네코드 선재에서 함께 하셨던 분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는 시점에서는 3개월 동안 바뀐 방식에 적응하 느리라 애로사항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람되고 즐거운 순간도 있었는데 20년을 통틀어 영사사고가 없었다는 것과 하이퍼텍 나다 시절 밖의 풍경을 볼 수 있었던 대형 창문을 열고 닫았던 순간의 그 즐거움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는 이번 폐관을 끝으로 영사기사에서 은퇴를 하지만 언제든 동숭홀 측에서 불러준다면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11월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쓸쓸하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전국의 극장을 돌며 영화도 보고 맛집 탐방에 남들이 안 가는 여행 코스도 가보기로 생각했던 것이죠. 실제로 시간이 남을 때마다 여행을 다녔습니다. 목포, 제주, 부산, 전주, 강릉...

하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나름 제 닉네임이 몇몇의 독립/다양성 영화계에 알려지긴 해도 정작 지방을 가보지 못한 저로서는 지방의 독립/다양성 전용관은 안녕한 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서두에 이런 이야기로 문을 열 수밖에 없는 이 시대가, 이 상황이 안타깝고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대한민국 독립영화... 안녕하신지요?


저는 그 대답을 들으러 전국을 돌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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