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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Dec 10. 2015

1. 광주 광주극장

민주화의 성지... 유물과 전설로만 끝날 수 없는 이유.


임검석
 1922년 일제시대 영화에 대한 검열이 시작된 이래 극장에는 임검석이라는 좌석이 극장 내부 한편에 자리 잡게 된다. (중략)
 조선총독부 산하 부서 기관에서 극장에서 영화 상영이나 극단 공연이 있을 때면 경찰관을 파견하여 공연의 내용이나 주제를 현장에서 검열하였는데 공연 내용이 독립을 상징한다든지 압박받는 민족의 설움을 표현하여 임검 경찰관의 비위를 거스르면 '주의'하고 임검석에서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렀고, 호루라기를 세 번 불면 공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하생략)







 시대가 변하면 변하는 게 많죠. 하지만 그게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더 지능적으로 법의 테두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이들도 있지요.


 무더운 8월 1일 광주... 몇  시간을 고속버스에서 보내고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죠. '26년'(2012)과 '화려한 휴가'(2007), '꽃잎'(1996) 등의 작품에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근데 시간이 없습니다. 각 도시는 1박 2일만 있다가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니깐요.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광주 하면 5.18과 관련된 기념관을 가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5.18 기념 공원 앞... 마침 기념센터 공간에서는 6.10 민주화 항쟁을 기념하는 사진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시민들의 모습이 사진 속에 담겼는데 왠지 모르게 이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저는 그 시절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광주에 가면 518번 버스를 타야 합니다. 숫자가 지닌 의미도 있지만 실제 이 노선은 광주와 관련된 기념관과 추모 공원이 모여있는 노선도이기 때문이죠. 광주를 가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옛 전남도청이 있는 금남로는 꼭 가야 합니다. 근데 너무 늦게 와서 그런지 옛 전남도청은 너무 어둑한 밤이었고 광주 여행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겨울이 되었고 4개월 만에 광주를 찾았습니다. 그 사이 옛 전남도청은 광주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이란 이름으로 새 단장을 하고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어두웠던 과거를 이겨내고 광주는 새롭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광주의 극장들은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금남로에는 많은 극장들이 있었지만 토종 극장으로의 유지가 불가능한 상태였고 대부분이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 상황에서 광주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극장이 있으니 바로 80년의 역사를 지닌 광주극장입니다. 광주 충장동 귀금속 거리에는 금은방, 주단(이불) 가게 등이 모여 있습니다. 찬란했을 과거를 뒤로하고 이곳에서 수 십 년을 함께 했을 광주극장을 갑니다.




 광주극장은 옛 단관극장의 모습을 잘 남기고 있는 전국에 얼마 되지 않은 극장입니다. 서두에 소개된 임검석은 지금은 사라진 서울 서대문의 드림시네마에서도 봤던 기억이 나는데 여기서 이걸 보니 반갑다고 해야 할까요?


 광주극장이 간직한 것 중의 또 하나는 옛날 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손으로 그린 개봉작 간판입니다. 지금이야 멀티플렉스 앞엔 대형 천막 포스터로 간간이 개봉작에 대한 안내를 보지만 예전 극장들은 전국의 도시마다 개봉작을 손으로 그리는 장인들이 한두 명씩 있었다는 게 놀라운 일이죠. 실제 20년 동안 광주극장의 손간판을 그려왔던 박태규 작가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광주극장에 가시면 박 화백이 그린 80주년 기념 스페셜 입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영화 상영을 알리는 종소리입니다. 예전 단관극장들은 녹음된 종소리로 영화 시작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멀티플렉스에서 길고 긴 광고를 보고 에티켓 안내, 비상대피로 안내를 듣고 나서야 영화가 시작됨을 알 수 있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죠.




 광주극장도 처음에는 상업영화를 틀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멀티플렉스로 가느냐 마느냐의 고민에 결국 광주극장은 다양성 영화 전용관으로 변화를 선택한 것이죠.


 광주극장의 신진아 프로그래머는 현재 광주극장의 상황은 어렵지만 단골들이 항상 찾아주신다는 것과 오랫동안 광주에서 사랑받던 극장이란 점과 상징성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애로사항은 멀티플렉스의 다양성 영화 중복 상영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으로 꾸준한 프로그램 개발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부터 광주 문화재단과 함께 독립/다양성 영화를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GV와 무대인사도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광주는 다른 도시와 달리 자신들이 살아온 것에 대한 자긍심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이는 거리 곳곳의 사람들과 문화시설 등을 통해 볼 수 있는 점이죠. 어쩌면 힘들었던 과거를 이겨내고 멋지게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광주는 누가 봐도 타 도시가 봐도 부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일제 잔재인 임검석처럼 독립/다양성 영화계를 무시한 행위는 지금 시대를 다시 한번 의심하게 만듭니다. 지금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벌어진 1980년 5월도 아니고 1940년대 일제시대도 아닌 2016년을 향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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