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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Apr 14. 2018

수성못

살기도 죽기도 힘든 세상...

 


강이나 호수에서 인기 있는 것을 뽑으라면 아마도 오리배일 겁니다. 보트를 빌리기엔 너무 비싸고 천천히 가볍게 강가나 호수를 둘러보는데 오리배 만큼 좋은 것만큼은 없죠. 하지만 오리배는 작동을 잘못하면 같은 곳을 맴돌다가 결국 호수 마야가 되기 쉬운 녀석이죠.


살기도 죽기도 힘든 세상에 우리는 어떻게 이 청춘을 보내야 할까요? 수성못 오리배는 알고 있을까요? 영화 ‘수성못’(영문원제  Duck Town/2017) 입니다.






 
대구 수성못의 오리배를 담당하는 알바생 희정은 꼬박 나오는 80만 원에 만족(?)하며 언젠가는 서울로 뜨겠노라 마음먹죠. 포스트잇을 붙이며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려고 편입시험 준비를 하죠. 그에게는 북쪽의 그분(!)을 닮은 남동생 희준이 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부모님은 어떻게든 그를 군대에 보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죠. 희정은 집에만 틀어박힌(그나마 도서관 외출과 병원 외출이 유일한) 동생에게 알바자리도 추천하지만 실패하죠.
 
수성못에 사람이 빠져 실종되는 사고가 나고 구명조끼를 주지 않았다는 불안감에 몰래 구명조끼를 물에 빠뜨리지만, 근처 동네 휴대폰 가게 직원인 영목에게 덜미를 잡히죠. 근데 영목은 좀 수상하죠. 그에게 달라붙는 정체 모를 사람들과 카메라 앞에서 죽음을 얘기하는 사람들까지….
 


최근 청춘 영화가 달라지고 있어요.
과거 ‘우리들의 천국’이나 ‘내일은 사랑’ 같은 낭만 따위는 없습니다. 학점을 따고 알바를 하면서 악착같이 살아야 하니깐요. 묘하게 최근 영화 ‘소공녀’와 교차점이 보입니다.
 
희정과 미소는 당찬 여성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돈과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이죠. 사실 희정은 잘못이 없죠. 그가 잠시 잠들었을 때 정체불명의 사내가 허락 없이 몰래 오리배를 타고 달아났으니깐요. 미소도 올라버린 담뱃값에 집을 포기한 거지 그의 잘못은 없습니다.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걸요.
 
이 영화의 주된 소재는 자살입니다. 하지만 자살을 아름답게 그린 것도 아니고 오히려 유쾌한 코미디가 섞여 있다는 게 인상적이죠. 자립도 주된 소재인데 희정은 자립을 시도하려고 하지만 그런 것은 깡그리 무너지죠. 차라리 죽을 수 있으면 편할지 모으겠지만 죽는 것도 두려운 게 사실입니다.
 


3년 만에 빛을 본 영화, 대구 출신 유지영 감독의 일부 경험이 바탕이 된 영화라고 하죠. 비극적인 삶을 누릴 기회(?)도 없는 사회에서 자살도 사치이죠. 도를 아느냐고 믿는 여인을 물리치는 듯하면서 끌려가는 희준과 또 자살에 실패하고 무기력해진 영목, 그리고 서울진출이 좌절된 희정의 모습에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자살을 미화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이제 희정을 놓아줄 수 있어서 기쁨과 아쉬움에 눈물 홀린 이세영 씨를 보며 드라마 ‘화유기’의 순수한 좀비 소녀 부자의 모습이 실제 모습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아울러 저는 그 미스터리 사내로 등장했던 강신일 씨의 최후가 궁금했었는데 알고나면 소름 끼지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보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만화가 앤디 라일리의 작품 ‘자살 토끼’는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토끼들이 나옵니다. 말도 안되는 자살 시도도 있고 매를 버는(?) 듯한 장면도 등장하죠. 자살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만큼 살기도, 죽기도 어려운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성못의 오리배는 과연 이런 그들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같고 있을까요?
‘나도 이러고 사는거 피곤하지만 너희들도 피곤하게 사는구나’라고 얘기하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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