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의 봄날, 다시 찾아올 봄날을 기다리며...
봄이 왔다고 하던데 4월에 눈과 비를 봅니다.
묘한 계절의 변화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세상이 조금씩 변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그 신호탄은 지난 4월 3일에 있었던 제주 4.3 70주년 행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하고 대표적인 소셜테이너이자 제주의 셀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가수 이효리 씨가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지요
지난 4월 6일부터 8일까지 성북구에 위치한 아리랑 시네센터에서는 독특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제주 4.3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벌어진 것이죠. 제주 4.3을 기억하는 영화들이 상영되었고 심지어는 미개봉작들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는데 모든 행사의 관람료가 무료였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합니다. 오늘은 이 특별행사에 상영된 영화들 중에 개봉을 앞둔 오멸 감독의 '눈꺼풀'(영문원제 Eyelids/2016)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4월 3일 그리고 4월 16일 우리에게는 잔인한 기억으로 다가온 그 날을 생각해 봅니다.
인적 드문 섬 미륵도... 뱀과 지네와 흑염소가 어우러지는 외딴집에 한 노인이 있습니다.
전화가 옵니다. 하지만 노인은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불안한 징조를 이미 알아버린 느낌입니다. 바람 빠진 고무보트... 그리고 한 남자가 옵니다. 노인은 그에게 떡을 먹고 가라고 합니다. 내키지는 않지만 떡을 바라본 남자는 떡을 집었는지 말았는지 묘한 행동을 하고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고장 난 고물 라디오를 겨우 수리해 음악을 듣던 노인은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입니다. 큰 배가 뒤집혀 침몰했고 사상자는 알 수 없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는 노인은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는데 어느 날 다시 전화가 오기 시작하고 이번에는 그 전화를 받습니다. 설마 했던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어디선가에서 정체모를 빨간 여행가방과 함께 생쥐 한 마리가 섬으로 내려옵니다.
액운을 쫓고 좋은 기운을 준다는 의미로 걸어둔다는 달마도... 근데 달마 대사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참선을 하고 있던 도중에 살짝 잠이 들었는데 깨고 난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났고 그는 자신의 눈꺼풀을 잘라버렸다는 이야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 첫 부분에 등장하는 얘기죠.
강성률 평론가는 이 영화를 오멸 버전의 '신과 함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망자들이 인간 세상을 떠나기 전에 미륵도에 도착하게 되고 노인이 만든 떡을 먹고 완전히 이 세상과 작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수상한 떡집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아마도 여러 손님이 왔을 테고 정체불명의 낚시꾼도 이들 손님 중 한 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젊은 소녀와 소년, 그리고 선생님이 오자 그는 질겁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얘기하죠. '너희들이 올 곳이 아니야'라고 말이죠. 너무 일직 온 아이들... 그래서 되돌려 보내고 싶은 사람들... 하지만 어절 수 없이 그들도 떡을 먹고 이 곳과 작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앞에 얘기한 생쥐 한 마리가 노인의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쌀이 있는 절구통에 들어옵니다. 쫓아내려고 절구로 내려치지만 절구가 부서집니다. 절구 대신 작은 미륵 석상을 절구 삼아 사용하지만 이것마저 부서집니다. 심지어 이 생쥐는 우물에 빠져 우물도 오염시킵니다.
이승을 떠나야 하는 것도 억울한데 이들 망자들이 먹어야 할 떡도 그들에게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작품 세월호 침몰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영화들이 세월호를 영화화하겠다고 말했고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거나 상업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려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멸 감독의 이 작품 역시 어쩌면 유가족의 슬픔을 더 건드릴 수 있을만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데 대신 직접적인 묘사를 피하고 그들을 위로 하는 진혼곡의 의미로 이야기가 그려진 것이죠.
묘하게도 4. 3 사건과 세월호 사건이 있던 4월 16일은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4월의 비극이라는 공통점과 제주에서 벌어지거나 제주를 향해 가던 도중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억지로 오멸 감독은 억지로 두 사건을 연결 지으려고 하지 않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오멸 감독은 끊임없이 4.3 사건을 통해 제주도의 아픔을 그려냈고 이들 작품에서도 그는 자극적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주 출신 감독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는 2014년 9월 이 영화의 제작사 자파리 필름이 있는 제주도로 간 적이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뒤 6개월... 영화사를 방문했을 때 제작진은 섬에 가있다는 관계자의 말을 들었고 과연 어떤 영화였을까 궁금증이 생겼는데 '눈꺼풀'을 보면서 느낀 점이 정말 기다린 만큼의 보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배우를 제외하고 최소 제작진 인원이 5명만 참여하여 제작을 했는데 그 공허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영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오멸 감독의 치밀함을 느낄 수 있었죠.
다시 4월 16일이 다가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그녀의 7시간의 비밀이 밝혀졌고 허둥지둥도 모자라 딴짓을 하면서 '아이들을 전원 구조할 수 없었냐'라고 말하던 게 결국 쇼였나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최근 영화 속 쥐처럼 이기적인 모습으로 국민을 기만했던 대통령 한 명이 더 구속되면서 짧은 시간에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만들었다는 점은 창피하기만 합니다.
이제 아픈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제주도의 비극이, 세월호의 비극이 슬프게 다가온 4월의 어느 날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