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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Feb 24. 2019

'시인 할매' & '칠곡 가시나들'

시를 잊은 그대에게... 할매는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가?

추운 겨울이 끝나가고 곧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시(詩)를 읽기 좋은 계절은 가을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시를 읽기 좋은 계절은 어쩌면 따스한 봄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야외에서 읽는 시가 더 나을 수도 있거든요.

시를 쓴다는 것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장벽이 높았지요. 하지만 생활 시의 대표주자인 하상욱 씨나 이환천 씨 등의 등장으로 시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시를 쓰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시를 쓰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 두 편이 개봉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시를 쓰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다큐멘터리 '시인 할매'(영문원제 The Poem, My Old Mother/2018)과 '칠곡 가시나들'(영문원제 Granny Poetry Club/2019) 입니다.


※소개해드린 시는 맞춤법이 일부 틀릴 수 있으나 영화에 소개된 어르신들의 작성 방식 그대로 소개함을 참고 바랍니다.








전남 곡성 입면에는 '길 작은 도서관'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여러 명의 어르신이 있습니다. 이 곳의 김선자 관장은 책 정리를 돕는다고 나선 어르신들이 한글을 몰라 책을 거꾸로 꽂는 모습을 보고 한글 교실을 열기로 마음먹습니다. 2009년에 한글 교실을 시작하고 2010년에 시 쓰기 수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종은 감독은 이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합니다.


그리고 최종 목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2016년 그들의 시를 담은 ‘시집살이 詩집살이’가 출간된 것이지요. 결혼 후 생활이라는 의미의 '시집'과 문학 중 하나인 '시(詩) 집'의 중의적인 뜻으로 만들어진 이름의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다시 한번 그림책으로 엮어 '눈이 사뿐사뿐 오네'로 출간됩니다. 실제 동화책 속에 실린 그림 역시 어르신들이 그린 그림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칠곡 약목의 '복성 2리 배움 학교'는 어르신들 사랑방이자 배움의 장소로 활용됩니다.  

평소에는 노인회관으로, 그리고 어르신들의 놀이터로 사용하지만 어르신들이 공부를 하러 모이는 날에는 배움 학교로 변신을 하지요. 이 곳을 담당하는 곳은 배움 학교 교사 주석희 씨입니다.

어르신들은 배움을 잊지 않음과 동시에 소소한 삶에 도전을 하기도 합니다. 생전 처음으로 우체국에  가서 아들에게 손편지를 쓰기도 하며 어느 어르신은 노래자랑에 나가 자신이 좋아하던 이미자 씨의 '동백아가씨'를 열창합니다. 역시 이들 어르신들도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감독은 '트루맛 쇼'와 'MB의 추억'등 다양한 시사 다큐로 논란의 중심에 서던 김재환 감독입니다. 시사 풍자 다큐 전문인 그에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라는 것은 놀랍기만 합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비롯해 몇몇 장면에서는 김재환 감독의 스타일이 일부 남아 있다는 것이죠.








묘하게도 두 영화는 같은 듯 다른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인 할매'가 할머니들의 시를 쓰는 계기와 상황들을 전면으로 보여주고 있다면 '칠곡 가시나들'은 주가 되지 않고 그냥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상황들 중의 하나로 묘사가 됩니다.

'시인 할매'가 책을 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어딘가의 목표를 향한 삶으로 보여지고 있는데요. 가령 초등학교로 가서 인기 작가들만 한다는 작가와의 대화를 무사히 마치는 장면들이 그런 예이죠. 반대로 '칠곡 가시나들'은 주가 되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시와 연계를 시키는 방식이죠. 딸의 집에 놀러 갔다가 삭막한 아파트 노인회관에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노래자랑 대회에 나간 이야기 등등 일상 생활안에서 시를 삽입하는 방식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모습도 볼 수 있죠. 두 영화 농촌 마을로 벗어나 시내 번화가로 가게 되는데 갑자기 병원이 등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시인 할매'에서는 마치 '이건 페이크야'라고 말하는 듯(물론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병원 옆에 있는 사진관으로 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차를 세워둔 곳이 병원이었을 뿐 실제 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간 것이죠. 하지만 '칠곡 가사나들'은 두 어르신이 병원에 향해 진짜 진료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쩌면 ‘나이 들어 아픔=병원 등장’은 원초적으로 등장할만한 장면인 것이죠.







두 편 모두 든든한 지원군 속에 개봉되었습니다.

'시인 할매'는 소녀시대 박수영 씨의 내레이션 예고편으로 제작되어 지원사격에 나섰고 '칠곡 가시나들'은 레트로 듀오인 바버렛츠의 곡인 '가시내들'을 전면으로 OST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코너를 소개할 때는 전혀 다른 소재나 상황이나 제가 억지로(?) 끼워 맞춰 두 영화를 소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시간의 이 두 영화는 공교롭게 같은 소재의 같은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3년의 제작기간도 동일하고 비슷한 시점에 개봉되었습니다.

제작사를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같은 소재의 영화는 충분히 나올 수 있고요. 어르신들의 마음은 진심이고 이들의 멘토가 되어준 김선자 씨와 주석희 씨의 마음도 진심일 것입니다. 다만 배급사 쪽에서 서로 개봉에 대한 조율을 했더라면 서로 윈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개봉으로 두 영화가 오해를 받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한글학교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못합니다.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며 자비를 들이고 후원금으로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제 침략과 6. 25 등으로 이들 어르신 세대는 한글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박탈당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에 맞춤법이 엉망일지 모르지만 어르신들의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배움의 한을 가지고 세상을 살다 돌아가시는 것보다는 배울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보장해준다면 이 분들의 삶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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