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영화제작기... 그럼에도 멈추면 안 돼는 이유.
1년에 수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합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 관객의 선택을 받는 영화는 몇 편 되지 않습니다.
천만이라는 한국영화계에서는 꿈의 숫자에 다다르는 영화도 있고 독립영화 시장에서는 만 명이라는 숫자만 넘어도 그래도 대박이라면서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극소수의 극장에서 상영하다가 몇백 명이 관객 수만 동원한 상태로 초라하게 막을 내리는 영화들도 있죠. 영화란 운명은 그래서 참으로 로또 같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오는데요.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중 공교롭게 메이킹 필름과 본편 형식으로 만들어진 구성의 영화들이 개봉되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오늘은 그들의 노고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영문원제 One cut of the dead/일본원제 カメラを止めるな!/2017)와 '어둔 밤'(영문원제 Behind the Dark Night/2017)입니다.
어느 외딴 인적 드문 공장용지 지하에 한 여성과 남성이 있습니다.
여성은 겁에 질린 표정이어야 하는데 어딘가 어색하고 남자는 리드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시 어딘가 모르게 이상합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 두 사람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좀비에 대한 영화를 찍고 있는 영화 제작팀. 이 단출해 보이는 팀들 사이로 스테프 한 명이 이 공장이 좀비가 있던 곳이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치한 퇴치법을 알고 있다면서 이상한 자세로 호신술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갔던 스테프들이 하나같이 이상합니다. 초점 없는 눈빛에 심지어는 팔도 없습니다. 좀비에 습격당한 스테프들... 정말로 감독은 리얼한 좀비 영화를 찍기 위해 좀비가 가득한 곳으로 데려왔던 것이죠. 하나둘 사지가 절단되고 피 비린내 나는 상황들이 이어지는데 근데 어딘가 모르게 좀비들도 이상하고 모두 이상합니다. 너무 이상합니다.
어둠 속에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이름 없는 이 사내는 사랑하는 여인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밖으로 향합니다. 슈퍼히어로가 그렇듯 멋지게 복장을 갖추는 듯싶은데 그가 입은 것은 예비군 전투복에 고무링을 씌운 얼룩무늬 바지. 그리고 질주하는 자전거.
마치 흡사 조커를 닮은 악당은 히어로를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조커로 보이는 악당을 뿌치치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왔는데 그녀의 이름은 마사. 이 역시 어딘가 들어본 이름인데 외모는 흡사 조커의 애인인 할리퀸을 연상시킵니다. 사랑이 멀어진 걸까요? 사랑한 줄 알았던 그녀는 그를 때리기 시작하고 죽은 줄 알았던 조커는 아이언조커로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옵니다. 마지막 전투를 위해 장소 이동. 사내의 선글라스 너머 괴력의 초능력이 등장하고 모든 전쟁을 끝마친 사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앞에 이야기한 줄거리는 바로 이들 영화 속의 영화(혹은 드라마)의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줄거리들을 말했으니 영화가 별로 재미없겠네 하시겠지만 사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이야기는 앞에 이야기한 생방송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갑니다. 재연 드라마 따위로 겨우 생계를 이어나가던 다카유키에게 소식이 들려옵니다. 좀비 전문 케이블 채널이 신설되는데 개국기념으로 생방송 드라마를 연출하라는 제안이 온 것입니다. 진정한 리얼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하던 와중에 이런 솔깃한 제한을 마다할 이유가 없죠. 배우들도 캐스팅하는데 하나같이 오합지졸입니다. 아이돌 출신 여배우는 가리는 게 너무 많고 술을 끊지 못해 촬영장에서 비몽 사몽하거나 생리현상을 이겨내지 못하는 등 하나같이 돌발상황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발생됩니다. 생방송이니 NG도 용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원테이크로 찍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땜빵으로 출연한 다카유키의 아내 하루미와 아버지처럼 훌륭한 감독을 꿈꾸는 딸 마호 등 온 가족이 영화에 참여하면서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당황스럽기는 '어둔 밤'도 마찬가지죠. 영화 감상동아리 '리그 오브 쉐도우' 맴버들은 선배 집에 모여 영화 이야기를 하는 상황. 그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를 만들 꿈에 사로잡히지만, 영화만 볼 줄 알았지 실전에 약한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놀던 레고 피규어를 주인공 삼아 시물레이션을 만들게 됩니다. 안 감독은 희대의 명작(?)인 '어둔 밤'을 시나리오를 보여주지만, 선배들의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나름 오디션도 보고 크게 마음을 먹지만 취업과 입대에 발목이 잡히고 이들의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무산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후배였던 요한은 선배가 되었고 당시 선배였던 안 감독이 이루지 못했던 '어둔 밤'을 다시 살리기로 맘먹습니다. 하지만 당시 선배였던 이들 중에는 전도사가 되어 더는 악당 연기는 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안 감독도 설득해야 하는 상황. 결국 단골 카페 아가씨를 케스팅하는 무리수를 두고 다시 영화 만들기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악당 역할을 하던 또 다른 선배는 메소드 연기에 심취해 무섭게 동료 배우를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다시 영화제작은 엎어질 위기에 처합니다.
재미있게도 두 영화가 교차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메이킹 필름과 영화 본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앞장면이 원테이크 드라마 '원 컷 오브 더 데드'의 본편을 보여준 것이라면 후반부는 이들 드라마가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과정을 보여주는 메이킹 필름의 장면 형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어둔 밤'은 1부, 2부에 해당하는 부분이 선 후배들이 몇 년에 걸쳐 만들려던 영화의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상황이라면 3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영화 속의 '어둔 밤 리턴즈'는 이런 상황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졌음을 다시 한번 관객에게 상기시킵니다.
이 황당한 상황들의 배경을 보고 나면 왜 영화가 이따위로(?) 만들어졌는가를 알게 되고 관객들은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보게 된 것이죠.
결국, 두 작품은 우리가 생각한 만큼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남에게 피해를 줘도 그게 자기 잘못인지 모르며(이상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겉멋만 들어서 허세를 부리고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 나이를 먹고 졸업을 하며 취업전선을 뛰어들다 보니 이번에는 너무 현실적으로 계산만 앞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가 '어둔 밤')
결국 현실과 타협하며 돈 되는 영화를 만들고 리얼리즘을 포기하며 과장된 연기로 어떻게든 관객이 눈에 띄어야 한다는 슬픈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웃픈 현실들이 비단 단편을 만드는 것만이 아닌 독립영화를 넘어서 상업영화계에서도 이슈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뿐일까요? 술에 찌든 배우를 깨워야 하며 어색한 장면을 맞추기 위해 뜬금없이 도끼가 등장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조커와 아이언맨을 교배시키는 상황들은 이렇게까지 우리가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가는 의문을 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뜬금없는 상황들이 영화의 잔재미를 주기도 하죠. 하루미가 끊임없이 보여주는 호신술 끝에 등장하는 '퐁!'이라는 뜬금없는 기합과 진정한 액션 연기를 보여주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랑을 담아) 'L.O.V.E!'를 외치는 대목은 이 두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잔재미이기도 합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들 영화를 만든 감독들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고 한때는 노숙자로 살만큼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영화를 만들고픈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며 '어둔 밤'의 심찬양 감독은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미완성 상태에서 끝을 맺다가 기사회생하게 되는데 1부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끝에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이 영화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심찬양 감독은 3부작을 완성해 극장에 걸었던 것이죠. 자신의 꿈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 이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죠.
저는 꽤 영화를 많이 본다고 자부합니다.
몇몇 장르를 가리는 것을 제외하면 다양한 장르를 보는 편이며 특히 독립영화나 다양성 영화들을 열심히 본다는 것이죠. 상업영화들도 상황이야 좋지 않고 입봉작(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는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립영화나 다양성 영화를 보러 갈 때쯤 감독들과 배우들의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 무조건 싸인을 받아갑니다. 그 사람이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간에 말이죠. 실제로 영화 '혜화, 동'을 보던 때 배우 유연석 씨의 싸인을 받았고 몇 년 후 그는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로 스타가 되었지요. 그리고 지금은? 말씀 안 드려도 알만큼 훌륭한 배우로 성장했습니다.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앞에도 얘기했듯이 몇백 명도 못 보고 지나칠 영화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들 영화가 졸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홍보할 방법이 없었고 그들의 싹수를 아직 관객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입맛에 안 맞으면 '쓰레기'라고 비아냥거립니다. 물론 모든 영화가 내 입맛에 맞을 리는 없죠. 그리고 모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없죠. 누군가는 대박을 터트리고 누군가는 쪽박을 치겠죠. 그래도 이것만큼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영화가 정말 잘 만들건 못 만들건 그들의 땀과 열정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