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짊어진 아이들... 나는 피해자인가요? 피의자인가요?
미성년자는 말 그대로 미성숙한 젊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이런 미성년자들이 세상을 많이 살아본 어른들보다 더 성숙한 경우도 있죠.
그들은 자기 자신과 싸우고 어른들과 싸웁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개봉 영화 중에 공교롭게 사건에 휘말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가 개봉되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사랑을 받고, 뜻하지 않게 죄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영문원제 Last Child/2017)와 '죄 많은 소녀'(영문원제 After My Death/2017)입니다.
은찬은 강가에서 물놀이 사고 중 친구를 구해내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은찬의 아버지 성철과 그의 아내 미숙은 하루하루를 슬픔으로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 성철은 수소문을 해 은찬이 구했다던 기현을 만나기로 합니다. 성철도 무뚝뚝하지만 기현 역시 만만치 않은 무뚝뚝함으로 성철을 대합니다. 꿈도 없어 보이는 기현을 자신의 인테리어 가게의 인턴으로 채용한 성철... 한편 기현으로 인해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한 미숙은 그를 미워하게 되지만 만나는 횟수가 늘면서 미숙도 기현에게 마음을 열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고 기현의 폭로로 인해 세 사람은 서로 상처를 받게 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런 가운데 다시 만난 세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슬픈 소풍길에 오르게 됩니다.
한 아이가 교실로 들어옵니다. 전학생인가 싶었던 아이는 선생님이 '보고 싶었던 친구가 돌아왔다'면서 그를 데려옵니다. 그런데 아이는 수화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약 몇 개월 전 상황으로 넘어갑니다.
학교 우등생이었던 경민이 실종되는 사고가 벌어집니다. 경찰이 수사를 하던 도중 영화와 한솔... 이렇게 세 사람과 함께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CCTV에는 영희와 경민이 서로를 마주하는 모습이 발견됩니다. 용의자 취급을 받게 된 영희는 진심을 이야기하지만 고통은 더해만 갑니다.
경민의 어머니는 그런 영희가 더 수상하고 의심을 하게 되는데 다리밑 강물로 뛰어들었다던 경민의 시신이 발견되고 두 사람의 아픔은 커져만 갑니다.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것과 더불어 억을하다고 느껴졌던 영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슬픔과 고통은 끝날 줄 모릅니다.
'살아남은 아이'와 '죄 많은 소녀'는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묘하게도 절친의 죽음 이후 살아남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과 소녀는 의도하지 않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요. 아울러 죽음을 지켜볼 수 없었던 가족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아이'의 기현은 어떻게 보면 일반적으로 보이는 소년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은찬의 죽음 이후 학교를 빼먹는 일이 잦아들었고 생계를 위해 배달 알바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달 오토바이 도난사건이 벌어지고 가게 주인은 기현을 의심하게 되었고 성철은 자비를 들여 분실한 오토바이 가격을 변상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가게 직원으로 채용하게 되지요. 분명 기현은 불량한 아이였지만 사장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도배사 자격증을 따고 새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그 꼴을 못 보는 사람들(?)로 인해 기현은 절망에 빠지고 기현은 '저는 사실은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라는 일종의 양심선언을 미숙에게 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묘하게도 영화에서는 두 번의 소풍이 나옵니다.
세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면서 오붓하게 단란한 시간을 보냈던 즐거운 소풍이 전자라면 기현의 고백 후 이어진 소풍은 소풍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그들의 절망 혹은 마지막을 알리는 듯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공교롭게도 그들이 향한 장소는 은찬이 세상을 떠났던 그 강가 근처의 숲 속이라는 점이라는 것이죠. 작정한 듯 성철과 기현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특히 기현의 극단적인 선택을 부부가 막아낸 부분의 상황입니다. 기현은 강가로 달려가 주머니와 몸속에 돌을 가득 넣고 자신의 몸이 가라앉게 만들던 그는 부부의 도움으로 돌을 빼내지만 돌만 빼냈을 뿐 그 죄는 돌만큼 가벼워졌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죄 많은 소녀'도 앞의 '살아남은 아이'와 같은 듯 다른 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경민과 영희는 절친했던 사이지만 어느 순간 멀어집니다.
사는 게 괴로웠던 경민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런 그에게 영희는 죽어볼 수 있으면 죽어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러라고 했던 말은 아니었고 자기 자신이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는 자책까지 합니다.
경민의 실종 후 아이들은 영희의 집에 가서 그가 사용하는 신발을 찢고 도망을 갑니다. 왕따를 만드는 방식인데 상당히 비굴하고 치졸하고 치사한 방식이었지요. 피의자인지 피해자인지도 모를 상황에서 저 아이 때문에 친구가 실종되었고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경민과 친하게 지낸 사람은 사실 없었거든요. 죽었으니 측은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왕따의 타깃이 사라졌으니 새로운 타깃이 필요했겠죠. 영희의 퇴원 후 아이들은 타깃을 바꾸고 한솔을 공격하고 경민이 죽기를 바랐다는 저주를 퍼부었다는 아이를 찾아내 영희에게 재물 받치듯 보내주게 되죠.
이런 타깃(왕따)을 변경시키는 방식은 '우리들', '여중생 A' 등의 작품에 이어 다시 보이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치졸하고 비굴한 방식입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왕따를 경험했던 저에게는 저 아이들이야 말로 정말 못된 아이들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남들이 하니 우리도 한다는 무뇌아스러운 행동입니다.
경민의 어머니의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죠.
실종된 아이가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어느 부모라도 똑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CCTV의 화면과. 몇 개의 진술만으로 영희를 의심하고 괴롭히는 것은 과연 바른 일이었나 생각해봅니다. 그런 이상한 집착은 경민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영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영희의 치료비를 지원해줬으니 자신은 영희를 만나도 된다고 생각하는 방식과 영희와 영희의 아버지의 앞에서 보이는 경솔한 행위는 피해자의 유가족이라 할지라도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두 영화는 태생부터가 다른 독립영화들입니다.
우선 '살아남은 아이'는 요즘 들어 새로운 독립영화의 대세로 사랑받는 영화사 아토(ATO)의 작품으로 '우리들', '경순', '홈'에 이은 4번째 제작 영화입니다. 신동석 감독은 신인 감독이지만 시나리오만큼은 제대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어떤 것이 진정한 용서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영화는 피해자의 관점에서만 진행하던 방식에서 또 다른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소년의 모습을 통해 용서의 무게는 쉽게 덜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어 들었습니다.
묵직한 모습으로 절재 된 모습을 보여준 최무성 씨의 연기와 더불어 우리에겐 원조 소셜테이너로 익숙한 김여진 씨는 자식의 죽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실제 가족의 입장에서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누구누구의 어린 시절 역으로 시작해 자신의 필모 그레피를 쌓은 성유빈 군은 이번 작품을 통해 불량 소년에서 꿈을 키우는 소년으로 등장함과 동시에 자신의 죄를 짊어져야 하는 슬픈 상황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아역시절부터 지켜봤다는 팬이 있을 정도로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라고 생각됩니다.
'죄 많은 소녀'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이제는 독립영화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제작한 영화입니다. '파수꾼', '잉투기', '소셜 포비아' 등의 작품들이 바로 여기서 탄생했고 봉준호, 최동훈, 장준환 감독 등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죠.
신인 김의석 감독은 자신이 겪었던 친구의 실종과 죽음을 접한 것이 모티브가 되어 만든 영화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신인들이 그렇듯 어눌한 말투로 관객들의 돌발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성실하게 대답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죄를 짊어져야 하는 소녀 영희로 등장한 독립영화의 뉴페이스로 자리 잡은 전여빈 씨, 최근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를 통해 성격도 털털, 얼굴도 털털한 일명 '츄바카'로 등장해 인기를 끌었던 한솔 역의 고원희, 그리고 경민의 어머니로 등장해 끊임없이 집착하는 모습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서영화 씨... 이렇게 세 명의 여성들이 이 영화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외에도 형사 역의 유재명 씨나 이들 사건에 말려들어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던 담임 역의 서현우 씨의 연기도 돋보였습니다.
두 영화의 소년과 소녀는 원치 않은 죄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피의자일까요? 원인이라고 볼 수는 있어도 그들은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에는 부정할 사람들은 없다고 봅니다.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몸을 공격하는 신체 폭력만이 나쁜 것이 아닌 언어폭력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가를 이 작품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이런 세상에서 방관자가 되어야 할까요?
적어도 우리는 방관자가 아닌 진실을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야 하는 저 역시도 용기 있는 사람인가 자문을 해보게 됩니다.
의식 있는 어른에서 가르치려는 꼰대가 되고 있는가란 두려움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