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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Aug 18. 2018

'22' & '카운터스'

일본의 민낯... 혹은 일본의 두 얼굴을 바라보다.

얼마 전 광복 73주년이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광복하고 3년이 지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날이 되었지요.

여전히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았고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했으며 전임 정부는 일본 정부와 합의를 보며 얼렁뚱땅 비극을 대충 마무리 지으려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일부 우익 세력은 한민족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제일 조선 학교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설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아픔... 광복절과 3.1절에만 생각해야 할까요?

오늘은 일본의 민낯을 보는 두 개의 다큐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다큐멘터리 '22'(Twenty Two/二十二, 2015)와 '카운터스'(Counters, 2017) 입니다.











중국의 어느 마을.. 천린타오란 이름의 어르신의 장례식...

수많은 인파로 보이는 이 장례식에는 누군가는 슬픔의 장례식일 이 곳이 의외로 축제의 모습으로 비칩니다.

그리고 다큐는 생존했던 스물두 명의 어르신들을 비추기 시작합니다.

허물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위안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고 지금도 터가 잘 보존되어 있는 위안소 자리에는 한중일 다양한 젊은 청춘들이 일본군의 노리개로 사용한 아픔의 현장도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다큐 내내 자신의 얼굴을 밝힐 수 없는 어르신의 모습도 보이고 요양소에서 모든 기억을 잃고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 중에 한국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마오인메이... 한국 이름은 박차순. 그는 일본군을 맞이하면서 얘기했던 맨트를 잊지 못합니다. 이제는 한국어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 그의 입에서 '아리랑'과 '백도라지'가 흘러나옵니다. 구성지면서 슬픈 이 노랫가락은 더 보는 사람을 슬프게 만듭니다.







이야기는 일본으로 넘어갑니다. 일본의 한인타운..

사람들이 시위를 합니다. 한국인은 이 나라를 떠나라는 아주 단순한 구호부터 한국인들, 중국인들을 죽여야 한다는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과 협박에 가까운 맨트들이 흘러나옵니다. 이들의 이름은 재특회.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이란 이름의 거창한 단체는 혐오 발언인 헤이트 스피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분노를 느낀 일본의 또 다른 사회단체가 등장하니 음악잡지 편집장이자 사회운동가인 노마 야스미치가 만든 '카운터스'가 바로 그것이죠. 카운터스는 여기서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을 비판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타격, 알려주기, 낙서 지우기 등의 부대가 생겨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약간의 폭력이 허용되는 '오토코구미' 부대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 모임의 행동대장은 전직 야쿠자 출신의 다카하시. 카운터스 측에서도 이들의 방식을 처음에 반대하지만 그들의 방식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등의 변화를 보이기도 합니다.

카운터스와 재특회의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되게 되고 일본의 아리타 요시후 참의원은 혐오표현 금지 법안을 일본 국회에 상정하게 됩니다.









'22'와 '카운터스'는 묘한 시점, 묘한 지점, 묘한 제작진들이 만든 다큐입니다.


'22'는 위안부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중국의 위안부 피해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것을 제작한 것은 중국과 한국이라는 점이죠. 중국 제작진이 찍고 한국 자본과 중국의 국민들이 클라우딩이 결합된 작품인 것입니다. 중국에서 개봉되어 많은 흥행 수익과 더불어 중국인들의 관심을 끌어낸 작품이 되었던 것이죠.

피해자들의 이야기들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이들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죠. 전직교사, 상인, 그리고 일본 유학생 등 그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공감대는 관객들에게 울림을 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들의 슬픔에 눈물 흘리고 같이 분노하는 일본 유학생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영화가 국내에서는 늦장 개봉을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됩니다. 중국에서는 2017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에 개봉하였고 중국보다 먼저 혹은 동시 개봉을 추진했지만 한국은 1년 늦은 지난 8월 14일 개봉하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 이 영화를 제작한 아시안 홈 엔터테인먼트의 김원동 대표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려줍니다. 박근혜 정권 때 작성된 블랙리스트로 인해 많은 투자자와 배급사가 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도와줄 수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 작품은 개봉하게 됩니다만 8월 성수기 영화들의 범람과 더불어 개봉 타이밍을 놓쳐 소수의 극장에서만 상영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카운터스'는 고양이가 등장해 재일 동포가 일본에 법적으로 인정받기 과정을 삽화로 등장시키기도 하며 전체적인 자막의 크기는 일반 자막보다 크고, 두껍게, 상단에 표시해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보는 듯한 스피드 한 속도로 다큐를 그려내는 정공법 방식을 사용한 시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 '카운터스'의 상황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재특회, 카운터스, 경찰 그 어느 쪽도 인터뷰 협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 영화의 감독인 이일하 감독은 전작 '울보 권투부'를 통해 재일 조선학교의 권투선수들의 열정을 다룬 작품을 만든 감독이었지만 내공 많은 감독도 여전히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경찰은 여전히 협조를 얻지 못했고 카운터스와 오토코구미의 전촉적인 지지를 받고 최종적으로 재특회의 우두머리인 사쿠라 이마코토의 인터뷰를 어렵게 성사시켰지만 자극적인 발언은 시위 때 발언과 별반 다름없고 여전히 한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죠.

이직 정작 일본 개봉을 하지 못한 상태이며 개봉일을 저울질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 우익 집단의 반발이 심한 상태에서 개봉은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혐오표현 금지법까지 탄생했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운명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두 작품의 내적인 부분을 살펴봤다면 외적인 부분을 살펴볼 필요도 있겠지요.


영화 '22'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작품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상업영화감독으로 익숙한 변영주 감독은 이미 1995년, 1996년, 1999년 세 차례에 걸쳐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으며 이후에도 수많은 상업영화와 다큐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월드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어폴로지'를 통해 한중필 세 나라의 어르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앞에도 얘기했듯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와 '허스토리'를 통해 위안부 어르신들의 삶을 영화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감동은 더 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제는 이들 이야기가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들 중에서 성공한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많지 않다는 것은 이들 이야기가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관심 없고 늘상하는 이야기이니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픈 과러를 잊는다는 것은 너무 안일하고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있었기에 우리가 성숙해지고 지금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을 텐데 사람들은 그것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카운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극우 세력들이 한국을 비난하고 중국을 비롯한 국가의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것이 이들의 모습입니다. 물론 의식 있는 일본인들과 일본 사화단체도 있지만 전체를 모두 환기시키기에는 힘들고 이들을 모두 설득시킨다는 것은 아주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혐오 발언을 하지 말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주자는 게 이 작품이 하고픈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반대에 있는 재특회는 사실 그들의 입장을 다루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만 그들의 이야기도 담아낸 것은 우리들의 의견을 주장하되 다양한 관점에서 같이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카운터스'가 갖는 미덕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할 때 최근에 이슈화되고 있는 메갈, 위마드, 일베의 대립, 나아가서 남녀가 서로 의견 충돌로 싸우고 있다는 부분은 우리 역시 그 혐오를 멈춰야 하는 이유가 무엇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울러 제주 난민 문제 역시 다양한 의견을 듣지 않고 한쪽으로만 치우진 방식으로 혐오를 부추기는 것도 옮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카운터스'의 말미에 재특회의 사쿠라가 자신들의 혐오발언을 얘기하기 전에 한국인들도 일장기 불태우고 아베 정권 비난하는 것은 혐오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박하는 장면을 떠오른다면 결국 우리도 누군가를 혐오하고 서로의 의견을 무시하는 재특회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네요.











두 영화의 엔딩은 슬프기만 합니다.

스물두 명의 이야기로 시작한 다큐 '22'는 점차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며 중국에 남아있는 위안부 피해자 어르신들의 숫자가 여섯 분에 그치고 있다는 부분은 슬프기만 합니다. (참고로 한국인 생존자는 2018년 8월 18일 현재 27 분입니다.)

'카운터스'에서 적극적으로 혐오 세력과 싸웠던 다카하시는 올해 4월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법이 통과되었으나 혐오 세력과 잦은 충돌로 여러 번 입건되었고 법적 투쟁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합니다.


얼마 전 길거리를 거닐다 나비 날개를 단 소녀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앉아 있고, 누군가는 서 있고, 누군가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날갯짓을 합니다.

과거를 잊고 역사를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계속 미워할 수만은 없고요.

적대국이자 동반자... 그것은 일본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미국일 수도 있고 중국일 수도 있고 바로 가까이 북한 일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존중해주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S. 두 작품 상영관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우 보물같은 작품입니다. 많이 관람해주시는게 이들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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