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들의 집합소
꼰대들의 집합소
“이번 포인트는 조류가 세니 보수적으로 하시죠.”
아닐라우에서 입수 전, 제주 ‘바다목장’ 조 대표가 던진 한마디다.
‘뭐래?’ 했다.
다이버들이 입만 열면 하는 말 중 가장 이상했던 단어가 바로 이 ‘보수적’이었다.
여기도 보수, 저기도 보수.
이쯤 되면 보수의 바다, 보수의 왕국이다.
부력 때문에 수면 위로 뜨려는 다이버의 몸을 가라앉히기 위해 허리에 차는 납덩어리, 웨이트 벨트(Weight Belt)조차도 꼭 ‘보수적으로’ 차라고 한다.
갑자기 수면 위로 튀어 오르지 않으려면 조금 무겁게 차라는 얘기다.
장비도 보수적, 자세도 보수적, 정신도 보수적.
‘라떼’란 말만 해도 욕먹는 세상에, 다이빙계는 그저 "보수적으로 하자"한다.
처음엔 꼰대들의 성지인가 싶었다.
여기도 꼰대, 저기도 꼰대, 세상 꼰대 다 모인 느낌.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보수’는 '안전'이라는 말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극보수인 그들은 밤이 되면 더할 수 없이 유쾌한 사람들로 변한다.
온갖 ‘라떼 시절’ 무용담이 펼쳐지는 다이빙 토크가 한없이 이어진다.
“내가 처음 다이빙 시작했을 땐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수면 위로 보글보글 떠오르는 공기방울 같다.
나는 다이빙계의 이단아다.
다이빙할 때마다 우리 팀 리더는 여러 번 뒷목을 잡았다.
너무 사고를 많이 쳐서 앞으로 안 데리고 다니면 어쩌나 살짝 걱정이 될 정도이다.
현지 가이드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하거나 말거나 내 맘대로 쏘다니기
새로운 생물체만 보면 직진해서 쫓아다니기
미역산호를 아주 조금 떼내어 입안에 넣어 맛보기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 물론 절대로 안될 일이고 아가다이버 시절 얘기다. - 쫓아다니는 버릇은 아직 못 고쳤다. ]
물속에서 딴짓하다 걸리면, 가이드와 강사들은 단호한 손동작으로 ‘엑스자 수화’를 날린다.
물속에선 사물이 25% 더 크게 보이기 때문에 그 단호함은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나는 슬쩍 무리 뒤로 빠져 남들 못 보게 무슨 딴짓을 할까 또 궁리한다.
프리다이버들이 잘하는 온몸을 앞뒤로 꿀렁이며 인어공주 춤추기,
오른쪽 왼쪽 몸을 흔들고 팔을 뻗어가며 아리랑 춤추기를 종종 시전 하며 말이다.
내 첫 다이빙 컴퓨터는 다이버들이 가장 보수적이라고 하는 순토(Suunto).
사람들은 ‘엄마 컴퓨터’, ‘군기반장 컴퓨터’라 부른다.
정말 그렇다.
수심이 자주 바뀌거나 바다환경이 바뀌어도 “안돼, 안돼!” 하며 삑삑삑—
모두가 나만 쳐다보게 만든다.
다른 다이버들이 안정정지를 끝내고 수면으로 올라갈 때,
순토는 “아니, 아직 더 있어야 돼!”라고 또 삑삑 거린다.
걱정 많은 엄마처럼, 잔소리 많은 군기반장처럼 소리를 질러댄다.
덕분에 팀에서는 내가 공공의 적이 되기도 한다. 삑삑 소리에 민폐는 덤이다.
바닷속에서 물체가 커 보이는 것처럼 소리도 멀리까지 크게 들린다.
그러니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쉼 없이 빽빽거리는 나의 순토가 지르는 비명소리에 외국다이버들이 쳐다보다가 욕까지 한다.
바닷속에서도 욕먹고 다니느라 바쁘다.
젠장 컴퓨터도 보수적이다.
우리 팀에는 강사도 많고, 천 로그 이상을 찍은 베테랑도 몇 있다.
제주목장 조 대표만 해도 리조트 운영에 무슨 장을 여러 개 가진 어마어마한 분이라 한다.
제주에 가서 아마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리조트와 바다 해양공원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내가 이런 대단한 다이버와 함께 다이빙을 하다니 뿌듯했다.
하지만 조대표와 거친 제주바다 다이빙을 함께 하다가 그 젊잖은 사람이 '입에서 욕 나올 뻔했다.'는 소중한 고백을 듣고야말았다.
됐고~
그건 어른 다이버들 세계 얘기고, 아직 ‘아가 다이버’인 나는 관심없다.
그저 재밌게 놀면 그만이다.
속으로 나도 할 말은 있다.
함께하는 다이버들이 다 실력자이니 믿을 구석이 있다는 거지.
어린아이들이 믿는 구석이 있으니 울고 떼도 쓰고 하는 거지.
알고 보면 니들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가는 쥐어터질 것 같아 참고 있다.
다이버들이 농담으로 가장 많이 하는 위협적인 말
‘내려가서 마스크 한번 벗겨드릴게요.’가 정말 실현될까 봐 무서워서 말 못 할 뿐이다.
하지만 오랜 유경력자 덕분에 이렇게 행복한 다이빙을 하게 된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은 한다.
생각은 한다고.....
내가 말했잖아
지금 내가 정상으로 보여?
지랄 중이라는 거 몰라?
내가 경력 많은 다이버들과 이러고 다니는 것이 다 내 복이지 니들 복이겠냐?
뭐 그렇게 구시렁거리며 따라다닌다는 거다.
다이빙을 하면서 평생 먹은 잔소리와 욕의 열 배는 들었다.
그럼 내속에서 중2병이 튀어나오는지
'삐뚤어질 테다.' 그런 반항심이 솟구치기도 한다.
사실
다이버들이 말하는 ‘보수적’이란 단어는,
다이빙을 하면서 기본기와 안전수칙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
언제나 첫 다이빙처럼 겸손하게 준비하는 자세,
팀원을 배려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지혜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다이빙계의 이단아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보수적으로 하자"고 말할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바다에서 살아 돌아오는 법은, 보수적으로 입수하고 겸손하게 상승하는 것이다. - 보리의 희망
여기 해녀체험을 다녀온 지인이 너무 좋다고 추천하여 벼르고 있는 중이다.
지랄병이 낫지 말고 가야 할 텐데........
[다시 정보를 찾아보니]
제주 서부 해안의 신창 지역에 위치한 바다목장은, 여의도 면적의 약 8배에 달하는 광대한 수중테마공원과 인공어초, 산호장 등 다양한 다이빙 포인트를 조성하여 국내 최대 규모의 해양 체험 관광지를 운영 중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