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도화지가 그리울 땐 휴가를 마음에 그린다. 지우거나 덧그릴 수 없는 새하얀 도화지를. 그 앞에 멍하니 앉은 내가 싫지만은 않다. 처음인 거다. 첫출발만이 주는 어둡고도 밝은 떨림. 어쩐지 내 집 같지 않아 불편하기만 하던 숙소에 적응해가고, 가슴 한편에 불안감을 지니고 출발한 낯선 행선지에서 나는 나보다 큰다. 불편과 불안을 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 마땅히 감수할 만한 방해다. 그렇게 내 경험과 상상만으론 가지 못하는 곳에 닿는다. 일상의 한토막일 뿐인 휴가가 이렇게 인생을 연습시킨다. 연습 없는 삶이 아니었다. 어쩐지 오늘이 낯설어도 익숙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