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새 자동차를 선물하고 싶다. 나는 이미 엄마가 5년째 잘 타고 있는 자동차를 선물한 기특한 딸! 그렇지만 자동차가 엄마의 평화를 얼마나 든든하게 지켜줬는지 알기에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 볼보 V60 크로스컨트리? 아니면 메르세데스-벤츠 E 450 카브리올레?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어떨까? 모두 사륜구동이라 빗길 눈길에서 마음이 놓일 테니까. 하나같이 단정한 외관 디자인도 엄마 마음에 꼭 들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낭만 성능’, 오디오 시스템이 차에서 내리기 싫은 수준일 것. 나는 자동차로 낭만을 즐기는 방법을 엄마에게 배웠다. 그녀는 자동차 운전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를 사랑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엄마는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 유원지로 자주 향했다. 엄마는 뒤따라오는 차들에게 우리 앞으로 가라며 갓길로 비켜주었다. 우리의 의식이었다. 엄마의 운전 매너는 지금 생각해도 시민 사회 최고 가치. 우리는 그 보상으로 천천히 달리며 경치를 즐겼다. 드라이브 코스에는 허브 농장과 슈퍼마켓이 있었다. 허브를 엄지와 검지로 비벼 손끝에 밴 향기를 킁킁 맡는 방법도 거기서 엄마가 가르쳐 주셨다. 슈퍼마켓 입구를 우두커니 지키는 커피 자판기 앞에 차를 세우고 엄마는 밀크커피를 나는 우유를 뽑아 마셨다. 차 안에서 엄마는 소프라노 신영옥의 가곡과 찬양사역자 송정미의 가스펠 카세트를 틀고, 볼륨을 높였다. 나는 우유와 음악을 한 모금씩 마시며, 엄마에게 재잘재잘 시시콜콜 이야기했다. 나의 하찮은 고민을 엄마는 커다란 귀와 품으로 들어주셨다. 엄마의 자동차는 그렇게 나를 키웠다. 그 사이 내 생각이 자라고 몸이 컸다. 이제 엄마의 운전석을 차지한 나는 조금이라도 목적지에 빨리 가겠다고, 숨을 참아가며 가속페달을 밟는다. 뒤따르는 자동차에게 내 길을 먼저 내주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풀잎을 들여다볼 때마다 새삼 그렇게 평화롭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비싸지 않은 낭만과 사랑하는 이의 작은 신음 소리를 쉽게 놓치는 걸까. 이제는 알 수 있다. 그때 엄마의 드라이브가 얼마나 고귀했는지. 얼마나 현숙한 여인의 안식 그 자체였는지! 가끔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허전해질 때 엄마에게 운전을 배웠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그것 만한 성취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