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대견스럽다. 보이지 않은 느낌에 또렷한 이름을 붙일 때. 사랑을 사랑으로 알고 슬픔을 슬픔으로 부를 줄 아는 마음을 쌓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괜찮아"를 연발하며 웃으며 울었던 적도 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해서 눈치 없이 눈물을 자꾸만 내보냈다. 몸은 일시적인 눈물의 신호만으로 부족했는지, 가슴을 답답하게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몸의 간절한 신호였다. 생각을 통제하지 말고 마음을 살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라고. 멋진 기술을 익혔다. 거울을 보며 표정을 살피는 '기분의 잔향 맡기' 기술. 잠들기 전이 가장 효과적이다. 어떤 하루는 화려했는데 나의 표정은 어두웠다. 안면 근육에 미동도 없었다. 어느 날은 특별한 일이 없었지만 거울 속의 나는 피식 웃었다. 느낌의 존재를 인식하는 연습이었다. 거울 속 표정을 살피는 일은 소중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도 높여주었다. 편안한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만큼 불편한 마음을 대하는 일도 소중하다. 어지러운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 마음의 눈을 똑바로 떠야 하니까.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제대로 읽어낼 줄 알아야 그 얼음덩어리를 조금씩 녹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냥 기분이 별로야"가 아닌 "왠지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 드네?"라고 스스로 말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정직의 열대인 듯하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뒤처진 상황일지도 모른다. 생각에 행동이 뒤처져 벌어진 간극, 그 사이의 틈을 마주하면 가슴 아프다. 그러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이라도 결국 느낌의 재료는 자신에게 있다. 뒤처지는 느낌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다 말고 옆과 뒤를 돌아봄으로써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그 정체가 무엇이든 자신의 느낌을 탐정하는 일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