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길을 잃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 줄 몰라
떠나는 길 손은 그저 말없이 걸었다
오랫동안 머무른 데를 한번 쭈욱 바라보고는
혹여나 지체할까 서두른 걸음이었다
앞으로는 새찬 바람이 불었다
좀 더 머무는 것이 좋았으나
다른 이들을 슬프게 하는 게 싫었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이면
남몰래 품어온 검은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어보는 데 지쳤다.
잠시 머물다가는 곳이었으나
마음속에는 순식간에 질척임이 일었다
"우린 슬픔을 가지고 태어났어
그건 우리가 슬픔 속에서 생겨났기 때문이야
어느 때엔 그 슬픔이 누군가에게 매력이 되어
자석처럼 끌려와 곁에 머물게 하겠지만
이내 곧 눈길을 거두어가 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 닿지 못하니까
그렇게 무력감만이 그를 채울 테니까..
그러면 우리가 가진 슬픔들은 더 큰 독이 되어
마침내 우릴 모두 삼켜 버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