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하게 이어지는 관계, 그리고 남겨진 마음
오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함께했던 시간이 길었지만, 이제는 각자의 삶이 바빠 연락이 뜸해진 사이였다. 어릴 때는 모든 순간을 공유할 만큼 가까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일터에서 자리를 잡느라 분주했다. 만나려면 시간을 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저 가끔 떠올리며 ‘잘 지내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모였다. 그를 기억하며, 함께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며, 그가 어떤 일에 힘들었을지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찾아온 친구들과 조용히 추모하며, 남아 있는 우리끼리 서로를 위로했다. 오랜만에 모였지만, 그 자리에서 우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서로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거나 챙겨주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빴을 우리 자신을 이해했고, 그 친구도 그러했을 거라 생각했다.
이제는 서로를 챙기기보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나이가 된 것 같다. 무리해서 연락하지 않아도,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 잘 지내고 있겠거니 하는 느슨한 연결이 오히려 편안한 관계가 되는 시기. 때로는 연락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안부일 수도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우정.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너그럽지 않고, 실패를 쉽게 용인해 주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나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있고, 끝내 이겨내지 못하는 순간도 있다. 힘든 시간을 지나온 친구에게, 그리고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별일 없이 지내자, 무리하지 말고, 가끔 떠올리며 그렇게 살아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