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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오래된 공간에서 마주한 시간의 흐름

by 쏭저르

어쩌다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한남동에 들른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살던 동네라서인지, 자연스럽게 근처 종합병원을 계속 이용하게 된다. 병원 기록도 그대로 남아 있고, 익숙한 골목길을 지나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남동은 20년 전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문을 닫은 상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철거를 앞둔 공간들은 묘한 적막감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입지가 워낙 좋은 지역이라 합의하는 데만 20년이 걸렸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 긴 시간을 버티며 기다린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료를 마치고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창밖을 보니 거리에서 해외 NGO 단체가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오전부터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휴가를 내고 잠시 숨을 돌리는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 편안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이곳의 모습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나도, 지금의 나도 여전히 같은 동네를 걷고 있다. 다만, 그때는 골목을 뛰어다녔고, 지금은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바라볼 뿐. 이제 동네는 새롭게 바뀌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나인 것만 같다. 시간이 흘렀지만,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는 이 감각이 묘하게 다가온다.


커피 한 모금. 조금 쓰지만, 오늘따라 그 맛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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