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작은 전시, 단단해지는 삶

앤서니 브라운 전시를 다녀와서

by 쏭저르

어릴 적 나의 가족은 특별한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을 본 기억이 두 번쯤, 학원에서 갔던 클래식 공연 정도가 어렴풋하다. 그 외에는 친척들과 함께 바닷가나 산으로 떠났던 여름휴가가 전부다. 작은 차에 빽빽하게 타고 가던 풍경, 쏟아지는 햇빛, 그리고 물놀이와 수박.


그래서일까. 나 자신을 돌아보거나 예술을 통해 나를 비추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어쩌면 그 시절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했을 것이다.


나는 종종 별일 없으면 아이와 함께 예술의전당을 찾는다. 여러 전시가 동시에 열리기 때문에 언제 가도 볼만한 프로그램이 있고, 공간 자체가 휴식처럼 느껴진다. 이번에는 앤서니 브라운 전시였다.

그의 작품은 일상의 틈 사이로 상상력이 흘러나온다. 익숙한 장면에 낯선 장치를 넣어 관객을 멈춰 세운다. 아이도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선 오래 머물렀고, 영상도 보고, 책도 함께 읽었다. 상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걷는 일상에서도 충분히 자라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마지막 코너에는 ‘셰이프 게임’이라는 체험 공간이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이 형과 자주 하던 게임이라고 한다. 아이는 주어진 모양에서 상상력을 더해 그림을 완성했고, 오랜 시간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전시장을 나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광장을 천천히 걸었다. 전시장에 오기 전에 새로 장만한 20인치 자전거를 아이가 처음 타보는 날이기도 했다.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부드러웠다.

원래 자주 가던 모차르트 카페는 리뉴얼 중이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오늘은 전시도 좋았고 날씨도 참 마음에 들었다.


나는 경기도에 살지만 서초에 있는 예술의전당은 차로 20분이면 닿는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충분히 충전되는 공간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말한다. “작은 일상 속에서도 상상은 자란다”고. 오늘 같은 하루가 그 증거일지도 모른다. 커피처럼 쓴 인생 속에서, 이런 문화생활이 시럽 같은 단맛으로 스며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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