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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Sep 19. 2023

다시 마음을 잡아야 한다면 우선 찬물 샤워부터?

[100일 100 글]94일, 아흔네 번째 썰

최근 한 다리 건너 알고 있는 지인 분의 부고가 있었다. 조금 거리가 있는 사이였지만 그래도 간간이 얼굴을 보며 지냈기에 몹시 당혹스러웠다. 영정사진을 보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애초에 장례식장을 가는 상황 자체가 처음이어서 더욱 황망했다. 그래서일까. 한 동안 뭘 하던 집중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회사에 일도 터져서 평소보다 더 노력이 필요했다. 머릿속이 하얘져서 글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탓이다. 정신을 조금 내려놓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정신도 차릴 겸, 답답한 속도 정리할 겸 외할머니 댁까지 운전을 해서 갔을 때의 일이다. 할머니 댁의 난방은 태양광을 이용해 작동된다. 아주 오래전에 설치가 된 터라 만약 샤워를 하고 싶다면 미리 조작버튼을 눌러 놔야 한다. 도착한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 습도가 몹시 높았던 날이다. 그날 이른 추석 선물을 많이 가지고 갔었는데 그것들을 날랐더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할머니와 큰 이모가 뭔가를 준비할 까봐 엄마는 우리의 방문을 비밀에 부쳤고, ‘그’ 버튼은 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잠깐 고민했다. 아무리 더워도 찬물 샤워라니.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 싶었던 것. 하지만 습도와 땀의 콜라보로 높아지는 불쾌지수 덕분에 망설임은 짧게 끝낼 수 있었다. 심장이 놀랄까 봐 찬물 마사지를 한 순간 이건 아닌데 싶었다. 하지만 이미 칼을 뽑았기에, 돌아갈 곳은 없었다. 그렇게 머리부터 들이부은 찬물. 솔직히 어떻게 씻었는지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부들부들 떨면서 욕실 밖에 서있었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든 생각은 왜 국가대표들이 눈 덮인 산을 뛰고 냇가의 얼음을 깨 그 안에 들어가는지 알 것 같다는 점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다. 딴생각도 들지 않고 머릿속이 명정 해진다. 몹시 깨끗해진다. 잡생각이 달아난다. 좀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서도, 효과만큼은 확실하다.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을 몇 천만 분의 일 정도 알게 된 기분이었다.


물론 찬물샤워 한번 했다고 정신이 돌아올 리 만무하다. 하지만 집 나간 정신을 붙잡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게 됐달까. 야, 너 이제 정신 차려야 해!라는 신호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것이라도 돼서 다행이다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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